신의 웃음 신의 웃음 예수의 호탕한 웃음은 정말 의외였다. 게다가 장돌뱅이 같은 차림에 더벅머리를 한 예수는 지금껏 보아왔던 준수한 성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예수의 모습은 역시 십자가에 달리어 비탄에 젖었거나, 혹은 인자하고도 그윽한 눈길을 하고 있는 서구적 모습이 익숙하다. TV 채널을 돌리다 불시.. 민혜의 골방 2007.01.04
어머니의 어머니 2003년 1월 어머니의 어머니 어스름 달밤이다. 모처럼 친정에 들러 어머니와 한 이불에 누웠다. 어머니는 웬일로 이제껏 입 밖에 낸 적이 없는 외조부모님의 숨은 얘기를 들려주셨다. 외조부는 학문을 좋아하셨다고 한다. 농부의 아들이었지만 땅 일구며 논마지기 늘려 가는 일보다는 공부에 뜻을 두었.. 민혜의 골방 2007.01.04
나무 지팡이 02년 11월 <수필> 나무 지팡이 현관 모퉁이에 허름한 나무 지팡이 하나가 서 있다. 작년 가을 이맘 때, 친정어머니와 팔공산을 오르며 주운 것이다. 나무의 종류는 잘 모르겠으나 가볍고 쉽게 부러지지 않는 게 안성맞춤이었다. 툭하면 눕기 좋아하는 나와 달리 어머니는 팔순이 코앞인데도 발 빠르.. 민혜의 골방 2007.01.04
작은 산에서 길을 잃다 친구의 원고를 봐주기 위해 용인에서 하루를 묶고 왔다. 65평 널널한 아파트에는 친구와 나 둘 뿐이었다. 원고를 보고 난 뒤 모처럼 와인을 마시며 긴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하룻밤을 지내고 난 이튿날 아침이다. 우린 차를 몰고 근처 작은 산(이름을 모르겠다)으로 등산을 갔다. 친구는 배낭에 물병을 챙.. 민혜의 골방 2006.07.22
그리운 것은 별처럼 멀다 월출산 가는 날이다. 나는 그 언저리를 네번이나 갔었지만, 번번이 산만 쳐다보다 왔기에 출발 전 부터 마음이 설레었다. * 밤을 달려 영암에 닿은 것은 새벽 3시 반. 버스는 도갑사 인근에 등산객들을 풀어 놓았다. 도갑사에 도착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쏟아져 내릴.. 민혜의 골방 2006.03.26
내 남자 친구의 전화 <수필이랄 것 까지는 못 되는 글> 일터에 가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들려오는 음성, "저, 이 * *입니다." 어머나, 루쵸(그의 세례명이다), 내 띠동갑 노총각 친구 아닌가. 그간 아들 결혼을 앞두고 그에게 이멜로 청첩장을 보냈건만, 도무지 소식이 없고, 수신 확인.. 민혜의 골방 2005.12.05
다시 읽는 <세토우치 자쿠코> 세토우치 자쿠코, 한 때 그녀의 글을 좋아했다. 십여년 전 우연히 손에 들게된 한 일본 여성의 책은, 필자의 사상을 접하기엔 너무도 축약된 것이어서 아쉬움이 컸지만, 시종 공감하며 읽은 기억이 있다. 새벽녘에 눈이 뜨여 다시 그 책을 손에 드니 구구절절 밑줄 그은 부분이 보인다. <사랑이 이루.. 민혜의 골방 2005.11.29
내 가슴속의 장미 문신 옛날에는 장미가 <비밀>을 의미했다고 한다. 지금도 'under the rose' 하면, '은밀히' '비밀스럽게'가 되며, 여기서 비밀이란, 중세적 교회의 절대 진리 앞에서 이단이 되는 것들이란다. 나는 이제껏 주류보다는 비주류, 인사이드 보다는 아웃사이드에 심신을 걸치고 살아온 것 같다. 그래설까, 내 가슴 .. 민혜의 골방 2005.10.27
청첩장 한달 남짓 남은 아들 결혼식을 앞두고 청첩장 정리를 하고 있다. 친정이나 시집이나 단촐한 집안이다 보니, 청첩장 보내드릴 분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게다가 돌아가신 분들도 적지 안고, 외국으로 떠났거나, 와병중에 계신 분들이 있으니 더욱 그렇다. 덕(?)분에 청첩장을 쓰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민혜의 골방 2005.10.10
이 세상에 없는 문자(文字) 논술 공부를 할 적의 일이다. 교수님 사모님이 하루는 교수님께 묻더란다. "여보, 엑설런트 스펠링이 어떻게 되지요?" 교수님은, 생각 안나면 걍 우리나라 말로 '엑설런트'라고 쓰라 하셨단다. 우리 말은 우수해서 웬만한 외국어도 다 표기할 수 있다고. 일본이나 중국은 사정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 민혜의 골방 2005.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