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혜의 골방

청첩장

tlsdkssk 2005. 10. 10. 07:54

한달 남짓 남은 아들 결혼식을 앞두고

청첩장 정리를 하고 있다.

친정이나 시집이나 단촐한 집안이다 보니,

청첩장 보내드릴 분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게다가 돌아가신 분들도 적지 안고,

외국으로 떠났거나, 와병중에 계신

분들이 있으니 더욱 그렇다.

덕(?)분에 청첩장을 쓰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편지 한 번 드려본 적이 없는 분들이기에,

겉봉의 주소는 일일이 손으로 썼다.

 

친척들에 이어 내 친구(문우와 교우)들을 추린다.

역시 그다지 많지 않다.

안다고 다 보낼 순 없으니 초대를 신중히

고려하기 때문이다. 

문득 <9켤레 구두로 남은 사나이>란 소설 제목이 생각난다.

친척이야 그렇다 치고. 친구란 내 삶의 궤적일 터이다. 

내가 그동안 살아오며 교제하고,

정을 나누며 마음을 주었던

대상들이 이렇게 소수라니....

게중에 몇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몇은 가지 치기를 하고,

몇은 생활고로 고통을 받고 있다보니 

초대 인원이 더 빈곤해졌다.

 

한데 열심한 크리스챤 친척 중엔 결혼식이 주일이라

못오겠다는 분들이 있고,  혼사 소식을 들은

지인 중에도 일절 말이 없는 분도 한 사람 있다.

반면, 나는 와주기를 감히 기대 조차 않았건만, 

먼 길을 와주겠다는 사람도 두 사람 있다.

특히 '둘리'는 알고 지낸지도 얼마 안되는 사이인데,

그 먼 대구에서 서울까지 와주겠단다.

 

그녀는 내가 잠시 대구 살 적에 논술 교육을 받으며

알게 된 사이다. 나이도 나보다 한 참 어리고,

많은 만남을 갖였던 것도 아니다.

사람 관계란 반드시 햇수로만 비례하는 건 아닌가보다.

물론 햇수가 주는 세월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세월이 갈수록 싫어지는 부류도 얼마나 많던가.

 

지금 나는 두 장의 청첩장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그 상대는 마땅히 보내주어야 할 오랜 교우들이다.

한데 현재 그녀들의 형편이 넘 어렵다.

그들은 이미 내 아들의 결혼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자기 코가 석자라 염두에도 없을 것이다.

나는 망서려진다.

보내? 말어?

 

청첩장 주소를 쓰다 보니, 수신인과  내 관계가

더 뚜렷이 정리되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