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상자 705

후회하지 않아/에디뜨 피아프

Non, rien de rien 아니, 정말 아니야.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 난 정말 후회하지 않아. Ni le bien qu'on m'a fait 사람들이 내게 준것이 행복이든 Ni le mal 불행이든 Tout ça m'est bien égal 난 아무 상관없어. Non, rien de rien 아니, 정말 아니야.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 난 정말 후회하지 않아. C'est payé, balayé, oublié 모든 대가는 치뤄졌고, 지워졌고, 잊혀졌어. Je me fous du passé 난 지난 날을 후회하지 않아. Avec mes souvenirs 나의 추억들로 J'ai allumé le feu 불은 밝혀졌어. Mes chagrins, m..

당신/ 고양이에 관한 시

'당신' 이승훈 ​ 고양이처럼 살고 싶어라 엎드려 있고만 싶어라 고운 피 흘리는 마음 복사꽃 복사꽃은 지는데 ​ 어디로 가고만 싶어라 이 어두운 마음 밝아오는 해이고 싶어라 아무리 채찍이 갈겨도 ​ 그리움은 끝나지 않어라 당신 얼굴에 입맞추고 싶어라 하아얀 돌이고 싶어라 파아란 구름이고 싶어라 ​ 모조리 버리고 오늘 바쁘게 명동을 걸어가면 바람부는 왕십리를 걸어가면 ​ 고양이처럼 살고 싶어라 언제나 다른 나라에 계신 당신 고개 한번 끄덕이면 복사꽃 복사꽃은 지는데 이승훈 시인 -당신- [출처] 고양이에 관한 시- 이승훈 시인의 '당신'|작성자 소보로

천양희

희망이 완창이다 천양희 절망만한 희망이 어디 있으랴 절망도 절창하면 희망이 된다 희망이 완창이다 *시집.창비 2005 배경이 되다 새벽이 언제 올지 몰라 모든 문 다 열어놓는다고 그가 말했을 때 꿈꿀 수 있다면 아직 살아 있는 것이 라고 내가 말했다 나에게만 중요한 게 무슨 의미냐고 내가 말했을 때 어둠을 물리치려고 애쓴다고 그가 말했다 생각의 끝은 늘 단애라고 그가 말했을 때 꽃은 나무의 상부에 피는 것이라고 내가 말했다 세상에 무늬가 없는 돌은 없다고 내가 말했을 때 나이테 없는 나무는 없다고 그가 말했다 바람이 고요하면 물결도 편안하다고 그가 말했을 때 산은 강을 넘지 못한다고 내가 말했다 더이상 할말이 없을 때 우리는 서로의 배경이 되었다

죽음에 대한 오독

죽음에 대한 오독 / 이명윤 이화공원묘지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죽음은 선명한 색채를 띤다 묘비 옆 화병에 이미지로 피어있다, 계절은 죽음 앞에서 얼마나 공손한지 작년 가을에 뿌린 말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죽음을 새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 술을 따르고 절을 하는 도중에 어린 조카가 한 쪽으로 치워둔 죽음을 만지작거린다 죽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한 까닭이다 죽음은 세월을 조금 뒤집어썼을 뿐 부릅뜬 웃음은 예전 그대로다 죽음의 눈을 편안하게 감겨줄 수 없어 미안했다 우린 서로 다른 계절을 살고 있으므로 고인의 생전에 대한 이야기 혹은 향기가 사라진 꽃잎들을 주섬주섬 챙겨 떠나는 길 산 중턱 수많은 무덤에는 새롭게 눈을 뜬 죽음으로 화사한데 길 건너편 나이도 추위도 잊은 노파가 죽음 한 송이를 오천 원에 ..

박재삼 시

박재삼시인 시상 10편을 감상해 보기 1 풀잎의 노래 / 박재삼 천지에 파랗게 풀잎들이 솟아 무슨 간절한 할말이라도 있는 듯 조용한 아우성을 지른다 네, 네, 네, 야단스러이 일제히 소리하며 일어나고 올망졸망 머리를 맞대고 환호를 치며 솟아오른다 아,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들은 시끄러운 말을 피하고 오직 바람 속에서 햇빛 속에서 몸을 통째로 내맡기고 있나니 파란 것이 어떻게 빛나는 것과 연결될 수 있는지 그것은 어릴 때부터 느껴온 수수께끼였어라 그리하여 그들은 드디어 바람에 흐르고 햇빛에 젖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해내면서도 그것을 다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묵묵한 가운데 치르는구나. 2 무봉천지(無縫天地) 박재삼 저저(底底)히 할말을 뇌일락하면 오히려 사무침이 무너져 한정없이 멍멍한 거라요. 문득 때까..

질투는 나의 힘/기형도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시집『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