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혜의 골방

나무 지팡이

tlsdkssk 2007. 1. 4. 19:15
  02년 11월

<수필>


                            

                        나무 지팡이


                                                              



  현관 모퉁이에 허름한 나무 지팡이 하나가 서 있다. 작년 가을 이맘 때, 친정어머니와 팔공산을 오르며 주운 것이다. 나무의 종류는 잘 모르겠으나 가볍고 쉽게 부러지지 않는 게 안성맞춤이었다.

 

  툭하면 눕기 좋아하는 나와 달리 어머니는 팔순이 코앞인데도 발 빠르게 나다니는 걸 낙으로 사셨다. 그런 어머니도 세월엔 당할 수 없는지 몇 해 전부터 무릎의 통증을 자주 호소하였고, 해마다 증세는 깊어만 갔다. 병원 치료마저도 별 도움이 안 되자, 작년엔 전에 없이 조급증을 보이며, 다리가 이만이라도 할 때 원 없이 돌아다니고 싶다는 얘기를 거듭하셨다.

 

  나는 작심하고 어머니를 대구로 오시게 하여 일주일간 오붓이 가을 여행을 즐겼다.

  팔공산 동화사 산길을 오를 무렵이었다. 과연 내 어머니다. 어머니는 화색 도는 얼굴로 아이처럼 기뻐하며 연신, “나는 산 공기만 맡으면 없던 기운이 어디서 펄펄 솟나 모르겠다.“하시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도 이따금씩 다리를 절룩거리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어머닌 평소에도 상늙은이 되는 게  내키지 않는다며 지팡이를 마다하셨다. 그런 어머니에게 내가 먼저 지팡이를 사드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산길을 내려오다 말고 나는 걱정이 되어 길가에 뒹구는 긴 나무 하나를 주워들었다. 즉시 어머니께 건네었다. 어머니는 그걸 짚어보곤 한결 편한지 내리 나무지팡이만 짚고 다니셨다.

 

  모녀가 며칠을 돌아다니는 동안 어머닌 그 추레한 것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러더니 마지막 날엔 현관 귀퉁이에 고이 모셔 놓고는, 내년 봄에 다시 와서 쓸 테니 버리지 말라고 이르셨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것도 지팡이는 지팡이인데...

 

  금년 봄 친정에 들러, 벚꽃이 고우니 남녘으로 꽃 나들이하자고 조른 적이 있었다. 속절없는 세월 속에 날로 쇠해지는 어머니고 보면 언제 또 나다닐까, 나 또한 은근히 조바심이 일었다. 어머닌 잠시 말이 없더니, 다리가 더 나빠졌다며 열심히 치료받아 가을에나 보자고 하신다. 어머니가 행락을 미룬다는 건 증세가 웬만큼 심각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갓 시집온 새댁도 아니건만 근래 들어 부쩍 어머니로 눈 붉히는 일이 잦다. 어머니 생각만 나면 왜 그리 가슴이 저려오는지, 남녘으로 내려온 뒤론 하늘마저 멀어져 가끔은 북녘으로 젖은 눈길을 둔다. 책상 앞엔 어머니 사진도 한 장 있다. 지명 넘어 불러보는 철늦은 사모곡이지만, 지난 날 나는 그리 사근사근한 딸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존재가 시리도록 다가온 것은 내 나이 중년이 지나고 부터다. 모성이란 자식 낳고 반생 넘긴 설늙은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속까지 알이 차오는 것일까. 자식을 키우고 성장시키는 동안 번번이 어머니의 심중이 헤아려졌지만 이렇게까지 깊숙이 다가오진 않았다.

 

  이제 어머니는 삶의 연만한 선배이자 친구이기도 하여, 자식으로 마음을 태울 때면 지난 날 어머니가 나로 인해 겪으셨을 몫까지 얹으며 이중고를 치르기도 한다.

 

  모녀지간이란 자궁을 지닌 같은 성으로서의 동류의식과 동병상련이 끈적하게 얽히고 설켜 더 애잔한 건지도 모를 일이다. 언젠가 친구들에게 이런 심중을 실토했더니 자기들도 오십이 되어서야 어머니를 더 절절히 이해할 것 같았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일전 어머니를 다시 뵈었다. '가을이 왔노라'고 운을 뗐더니, 요즘은 허리까지 빠지는 듯 해 도무지 엄두를 못 내겠단다. 팔순의 노각이 더 성성해질 리 만무하고, 마음대로 운신을 못한다는 건 어머니에게 있어 삶의 박탈과도 같을 터이다. 그 얼굴 가득 드리운 쓸쓸함을 바라보노라니 코허리가 꺾이듯 시큰거렸다.

 

  지난여름만 해도 어머닌 한 줄기 희망을 잃지 않았다. 내년에는 나와 함께 뉴질랜드 여행을 떠나자고, 다리 아파 힘이 들면 업고라도 다니겠다 부추겼을 때, 어머니는 그 좋다는 뉴질랜드 땅을 한 번 꼭 밟고 말겠다고 몹시 좋아하셨다.

 

  나는 어머니와의 뉴질랜드 여행을 간절히 소망하였다.  다시는 만날 길 없는 저 먼 곳으로 떠나시기 전, 어머니의 주름진 손을 잡고, 힘드시면 힘내시라 젖 먹던 힘을 보태 어머니를 등에 업는 흉내라도 내보고 싶었는데 이젠 그 마저도 완전히 접으신 듯 어떤 약발도 효험이 없다.

 

  현관 청소를 하며 나무지팡이를 바라본다.

 볼품없는 것이건만 1년이 되도록 치우지 못했다.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팡이엔 거미집이 넝출거린다. 산수 좋은 숲길 떠나 침침한 현관 구석에 박혀 있었으니 지팡인들 오죽 숨이 막혔을 것인가.

  '내년에 또 쓸 테니 버리지 말거라. '

  어머니의 음성이 아직 선하여, 거미줄 걷은 지팡이를 도로 그 자리에 세워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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