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1037

한동안 잊고 지냈다

블로그를 찾은 게 얼마만인가. 나 혼자 드나드는 까페는 거의 매일 들르면서 블로그는 찾질 않았다. 오늘 글을 쓰다가 블로그를 처음 시작한 연대를 알기 위해 들어왔더니 쥔장 없는 집에 다녀간 이름 모를 객들의 흔적이 적혀 있었다. 금년에도 나는 글을 쓰며 얻어낸 소득이 있었다. 월간 S사의 문학상을 받은 것, 그리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공모하는 발표지원 공모에 수필 세편 낸 것이 선정돼 200만원을 받게 된 것 등. 블로그에 곰팡이 필까 봐 앞으론 가끔씩이라도 다녀가야겠다.

황혼이란

황혼이란 곰삭은 나이다. 뜸들어 완숙해진 나이다. 자식으로부터도 어느 정도 해방되니(자식 AS는 평생이라지만) 자신의 시간이 많아지는 나이다. 나는 나이듦을 서글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나이듦을 즐기며 글을 써 나가다 보니 문운도 풍성히 뒤따른다. 나에게 올해는 특별한 대운의 해였다. 두 차례의 가톨릭 신앙수기 당선, 수필집 출간, 디멘시아 문학상 공모 소설 대상 수상(레테의 사람들), 문화부 산하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문학나눔 우수도서에 이 선정. 공모수상에서 오는 상금도 많이 받았고, 머잖아 어머니의 불 선정으로 인한 인세도 들어올 것이다. 최근 또 다른 장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내년엔 소설을 완성해 볼 계획인데, 제법 오래 살다 보니 그간 삶에서 보고 느낀 게 다 작품의 자료..

<어머니의 불>, 일냈다

금년은 내게 대운이 드는 해인가. 가톨릭 신앙수기 공모전 2회 수상, 작년에 이은 수필집 출간, 디멘시아 문학상 소설공모 대상수상.... 어제는, 올 여름에 출간한 이 한국문화예술위원에서 하는 문학 나눔 우수도서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문턱이 높기에 무심히 지냈는데 어제 연락을 받았다. 감사, 감사! 금년 3월 하늘나라에 가신 호랑이 띠 도삼분 우리 엄마가 도우신 모양이다. 엄마 사진과 눈이 마주칠 때면, "엄마, 엄마, 도삼분, 호랑이 띠 울 엄마의 저력을 보여주세요." 하며 농담 섞인 대화를 나눴었는데... 엄마가 당신의 딸인 나를 통해, 생전에 글을 쓰고 싶어했던 자신의 소망을 푸신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레테 강의 사람들

와우~ 내가 또 일을 질렀다. 디멘시아문학상 공모 중편 소설 대상 당선! 워낙 빨리 급조한 거라 되리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지난 5~6월 두달 간 써내린 작품이다. 그것도 원고 정리하면서 동시에 쓴 글이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두 작품 사이를 오가야 했다. 당선 소식 받고, 어제 밀쳐두었던 원고를 열어보았다. 마감 입박해 보내놓곤 가을부터 퇴고해보려던 참이었기에 나도 내 소설을 잘 모르고 있었다. 떄문인지 남의 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읽었다. 틀린 글자, 빠트린 글자...여기저기 속전속결의 흔적이 보였다. 내 기준이긴 하지만 일단 재미있게 읽히기는 했다. 절반의 성공? 이 작품은 100% 픽션이나 95년도에 발표했던 단편 과 어딘가 맥이 닿아 있다는게 스스로 놀라웠다. 과 과 은 독립적인 작품이나 ..

얽힌 명주실 풀듯

닷새나 넘게 왼쪽 귀가 먹먹해 이비인후과엘 다녀왔다. 양쪽 귀를 진찰하고, 청력검사까지 했지만 별 이상이 없다. 그렇다면 원고 스트레스 때문일까. 아마도, 아마도.... 처음 귀가 먹먹했던 그 전날 나는 글이 안 풀려 몸부림이라도 칠 것 처럼 스트레스가 고조되었다. 뭐랄까 얽힌 명주실 타래를 푸는 듯한 기분이었다. 가느다란 명주실을 다뤄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잘 엉키고 얼마나 잘 안풀리는지. 여길 풀어 놓으면 저기가 엉키고 저길 풀어 놓으면 또 여기가 엉킨다. 올이 가는 명주실로 바느질을 하다가 몇 땀 꿰매지도 못하고 실이 꼬이고 엉켜 가위로 실을 자라거나 바느질 감을 내팽겨친 경험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불

53년 엄마의 일기 '어머니의 불'이 지금 인쇄중이다. 지난 해 2월부터 1년 여 작업한 이 원고를 탈고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코로나 덕이었다. 손녀가 생기고부터 내가 언제 지난 해와 같은 느긋한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항공사 승무원인 며느리의 직업으로 내 집과 아들네를 오가느라 나는 아무 것도 계획할 수 없는 일상을 보내야 했다. 누구와의 약속도 원하는 날을 미리 정해 잡을 수 없었고 재충전을 위해 뭔가를 배우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승무원 일이란 매달 근무 일정이 바뀌고 근무 일자를 미리 알 수도 없는 데다가 이따금 근무에 변동이 생기는 바람에 서울을 벗어나 마음 놓고 여행하기도 어려웠다. 비대면이 권장되었던 지난 1년간 집콕하며 53년간 쓰신 친정 엄마의 일기를 읽었다. 읽는 동안 나는 두 ..

아들이 고맙던 날

인간이란 간혹 큰 유혹에 처해 흔들리지만 소소한 유혹에도 흔들린다. 큰 유혹이 악과 결부되는 거라면 양심의 작용으로 물리칠 수도 있겠으나. 소소한 유혹은 자칫 방심하기가 쉽다. 가령 물건을 사고 거스름 돈을 받는 과정에서 얼마를 더 받았다거나 하는 경우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그 상점이 평소 바가지를 씌운다거나 물건 값이 다른 곳에 비해 비쌌다고 여겨질 경우엔 그에 대한 응징이기라도 하듯 더 받은 돈을 당연하게 제 지갑 안에 넣는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엔 천원이나 백원짜리 동전 하나라도 덜 받았을 경우 곧장 주인에게 얘기해서 받아낸다. 그 가게가 다른 집에 비해 염가로 파는 상점이라 해도 그렇다. 살다보면 이런 일은 몇 번은 겪게 되는 일이다. 그런 후 조금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은 웬지 께름찍하여 그..

떠난 엄마의 서랍을 열고

글 제목이나 책의 표제를 정하는 일은 때로 머릿속에 쥐가 나게 한다. 머잖아 출간할 새 책을 놓고 아직 표제가 정해지지 않아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친정엄마가 53년간 쓰신 일기를 토대로 내 단상을 엮어 펴내는 이번 책의 이름을 '엄마의 일기'라고 하려니 너무 평범하고, 목차1의 제목인 '유머레스크를 들었다'로 하려니 음악에 상식이 부족한 사람들에겐 금세 이해되지 않을 듯 하여 마지막으로 굴려본 생각이 역시나 목차의 제목인 '그래도 해피엔딩'이었다. 한데 출판사에서는 '그래도 해피엔딩'은 뭔가 와닿질 않으니 부제로 '53년 엄마의 일기'라고 하면 어떨까 하는 의견을 보내왔다. 그러다 오늘 아침에 불현듯 이런 제목이 떠올랐다. '떠난 엄마의 서랍을 열고' 혹은 '엄마의 서랍을 열고' 지난 해에는 를 상재하여..

명동, 내 영혼의 고향 2

나는 명동파, 어쩔 수 없는 명동파, 명동을 사랑한다. 강남이 어쩌저니저쩌니 해도 지금의 강남과 예전 명동의 위상은 비할 바가 못된다. 강남이 대세라지만, 이젠 도농간의 격차도 좁아졌고, 서울 변두리도 갖출 건 다 갖춰진 세상. 강남에도 아파트, 서울 요소마다 아파트, 지방마저 고층 아파트 시대다. 지역마다 편의 시설과 백화점과 대형상가가 자리하고 있어 학군이나 집값만 신경쓰지 않는다면 굳이 강남을 선호할 이유도 많지 않다. 그러나 내 어린 시절의 명동은 군계일학이요 별천지였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명동성당과 영락교회, 문화의 전당인 시공관(지금의 국립극장), 유행을 이끌어가는 호화로운 양장점과 구두방(금강제화를 비롯한) , 고려정, 한일관 같은 일류 음식점과 태극당 고려당 같은 고급 제과점, 한복을 곱..

명동 , 내 영혼의 고향 1

어제, 간만에 명동 땅을 밟아보았다. 가톨릭평화방송, 평화신문사에서 주최한 신앙수기 시상식에 가기 위함이었는데, 상을 받는 날인데다가 명동에 걸맞는 차림을 하려고 모처럼 굽 있는 구두를 신고 나섰다. 아파트를 나서는데, 아무래도 발걸음이 불편했다. 안되겠다 싶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 단화로 바꿔 신고 다시 나섰다. 그러느라 명동 역에 도착했을 땐 시간 여유가 많질 않았다. 뛰기 시작했다. 한데 칩거기간의 운동부족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노령이 된 내 체력을 증명이라도 해주겠다는 듯 숨이 턱턱 막혀왔다. 미사를 먼저 드리고 시상식을 한다 했으니 늦으면 안될 일이었다. 게다가 평화방송 성당이라 장소도 협소하지 않은가. 명동은 내 영혼의 고향이다. 4살 때 명동성당에서 영세받은 이후 처음 접한 고딕 양식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