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혜의 골방

내 가슴속의 장미 문신

tlsdkssk 2005. 10. 27. 08:11

 

옛날에는 장미가 <비밀>을 의미했다고 한다.

지금도 'under the rose'  하면,

'은밀히'  '비밀스럽게'가 되며, 

여기서 비밀이란,

중세적 교회의 절대 진리 앞에서

이단이 되는 것들이란다.

 

나는 이제껏 주류보다는 비주류,

인사이드 보다는 아웃사이드에

심신을 걸치고 살아온 것 같다.

그래설까, 내 가슴 저변엔 갖가지 장미 문신이 평생을

가시지 않고 따라다니는 것  같다.

 

처음으로 장미가 새겨진 건

초등학교 3학년 때 첫영성체를 받는 날이었다.

영성체를 하기  1시간 전엔 물 외엔 어떤 음식도

먹어서는 안되었는데(이를 공심재라고 함),

난 그만 깜박하고, 전날 아버지가 사오신

'챰스' 사탕 한 개를 먹어버렸다.. 

새콤한 사탕물을 꼴깍하고 뱃속으로

삼켰을  무렵에서야 나는 비로소 '공심재'를

어겼다는 자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엄마의 질책이 두렵고,

그 어려운 요리문답을 달달 줄줄 외워

신부님께 1:1로 찰고(테스트) 받아야 한다는 게

너무 아득하고 두려워 

그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그냥 첫 영성체를 하였다.

 

생각해 보라, 초등 3학년 아이에게,

*문: 사람은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났느뇨?

*답: 사람은 천주를 만유 위에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났느니라.

이런 식의 문답이 얼마나 잼없고,

지루하고, 끔찍했겠는가를.

 

도대체 '만유'란 무슨 의미며,

'영혼'이란 내 몸 속 어디에 

박혀 있는 괴물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던 나이였다.

그러니, 뭔 소린지 모를 단어 하나만 망각하면,

줄줄이 외웠던 모범답들이 하얗게 지워지기 마련이었다.

하여, 그깟 사탕 하나로 다시 6개월을 재수한다는 건

너무 끔찍한 일로 여겨졌다. 

 

게다가 엄마에게 꾸지람 받을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였다.

나는 결심했다.

'그래, 차라리 범법자가 되자.'

 

당시의 교리에 의하면 모령성체(冒領聖體)는

대죄(大罪)이고, 대죄를 짓고 죽으면 당근 지옥행이다. 

그후 나는 장차 죽으면  지옥에 떨어질 거라는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고해성사란 제도가 있긴 했지만,

신부님에게 혼 날 것이 두려워,

다른 죄는 또렷히 고백하면서도,

'모령성체'라는 말만은 혀를 굴려

적당히 어물쩡 넘겨버렸다. 

그러고 나니  또다른  고민이 한가지 추가되었다.

"난 고해성사를 성실히 보지 않았으니 고해성사를 모독했구나.' 

 

나는 카톨릭에 쇄신을 일으켰던

제2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기 이전 세대에

유아 세례를 받았다.

당연지사로 어린 내게 있어 신의 이미지는

사랑보다는 죄를 징벌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장미'(이단)가 아니었음을 안다.

그렇다면 현재 내가 지닌 장미 문신은

어떠한 의미를 지닌 것일까.

나는 얼마나 더 살고 얼마나 더 고민해야

장미 문신을 지울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먼 훗날, 나는 또다시 이것 역시

장미가 아니었다고  판단하게 될 것인가? 

장미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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