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1037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 이후

한국인이라면 '말이 씨가 된다'라는 속담을 모르는 이는 없을 터. 2002년에, 나는 어떤 소설가에게 앞으로 책을 세권쯤 더 낼 생각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무슨 계획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고 막연히 그냥 툭 던져본 소리였다. 그랬더니 그녀는 택도 없다는 듯 "그럴 수 있을까요?" 했다. 나 또한 그냥 던져본 소리라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첫 작품집을 내고 난 뒤로 점점 책을 내기가 싫어져 원고 청탁에 응하며 발표하는 것으로 끝내겠다고 마음 굳게 먹기도 했다. 책 세권의 꿈은 날로날로 멀어지고 아침 이슬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한데 그로부터 18년 후, 놀랍게도 나는 예정에도 없던 두 번째 작품집을 상재했다. 가 기획수필집 공모 한 것에 운좋게도 당선된 덕이었다. 2002년도에 첫 수필집을..

혼자 사는 재미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본디 어려서부터 혼자 잘 노는 아이였지만, 외로움을 탄다는 황혼이 되어서까지도 이렇게 잘 놀 줄은 몰랐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으로 내게는 놀 거리가 많다. 코로나 블루? 그딴 건 내 사전에 없다. 책하고 놀기, 글쓰기랑 놀기, 혼자 소리내어 하느님과 농담하는 재미, 개 인형(골드리틀리버 종이다. 개만큼 크고)과 사진 속의 고양이하고 놀기, 영화보며 놀기, 음악 들으며 놀기... 이밖에도 수많은 놀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 요즘은 단톡방엔 아예 들어가지도 않는다. 내 영혼과 가슴이 뛰지 않는 일엔 앞으로도 가급적 참여를 줄일 생각. 어젠 소설가 윤대녕의 글을 읽었는데, 도서관의 직원들과 사서들은 모두가 밀납인형 같았다는 말에 혼자 킥킥 웃었다. 내가 아는 한 전직 사서의..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 인세 받던 날

첫 인세를 받았다. 지금까지 원고료와 문학상 상금은 적잖이 받아봤지만 책에 대한 인세를 받은 건 난생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내 예상치를 상회했음 ^^) 내 가슴에선 환호의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 감사합니다! 한없이 기뻐요!~~~두근두근두근, 둥둥둥~~ 그 때 한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대박나기를 빈다면서도 내 책을 사지 않은 사람의 전화였다.(혹 내 책을 사서 읽었다면 분명 소감 한마디 쯤 나올 법 한데 일언반구 없었으니까) 책이 얼마나 팔렸느냐하기에 오늘 첫 인세 받았다며 액수를 밝혔더니 '더 많이 팔려야 할 텐데...'한다. 그에 대한 내 대답은 "내 예상보다 초과했는 걸요. 물론 앞으로도 책이 계속 팔려주길 바라지만, 현재까지만으로도 나는 기뻐요. 소수지만 광팬을 얻었고,..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 책 사인하던 날

어제, 수필가 지망생인 두 여성이 내 책을 사들고 사인 받겠다며 우리 동네로 찾아왔다. 함께 점심 식사를 한 뒤 인근 '크리스피 도넛' 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오리지널 글레이즈드 도넛 두 박스를 곁들여 놓고) 세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었다. 어제 처음 만난 P씨는 식성에 관한 한 나와 공통점이 많은 것 같아 초면임에도 매우 반가웠다. 여성 치고는 대식가, 뭔가 당기는 음식이 있으면 사정없이 먹어주는 것 등... 그녀가, 크리스피 도넛이 처음 한국에 선 보였을 때 내가 한 번에 몇 개 먹었는 줄 아세요? 라고 묻기에 '10 개'라고 대답하자 맞다면서 깔깔 웃었다. 내 글 '슈거는 슬프다'에 나오는 것처럼 쵸코파이가 처음 출시됐을 때 하루에 10개를 먹은 경험이 있는 나였기에 그런 것쯤은 쉽게 맞출 수 있..

임어당..

「즉, 반은 쉬고 반은 활동하고, 반은 일하고 반은 쉬는 정도, 집세를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조금도 일을 할 필요가 없거나 친구들을 돕기 위해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돈을 좀더 가졌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도 않을 만큼의 부자도 아니고, 피아노는 있으되 그저 절친한 친구에게 들려주거나 주로 자기 혼자서 즐길 정도의 것이고, 수집은 하되 수집품을 난로 선반 위에다 진열해 놓을 정도의 것이고, 독서는 하되 도를 넘지 않고, 학문은 상당하되 전문가는 되지 않고, 글은 쓰되 신문에 보내는 원고가 때로는 떨어지고 때로는 실리게 되는 정도 ― 한마디로 줄이면, 중국인에게 발견된 가장 건조한 생활의 이상이라고 내가 믿는 것은 중산 계급의 생활이상이다.」 임어당 생활의 발견에서

떠난 그대....서평

출판사 서평 독자의 차가운 외면에도 나는 왜 무모한 도전을 하는가! 우리 관용구 가운데 ‘한 방 먹이다’라는 말이 있다. 다소 속된 표현으로 ‘말 따위로 상대방에게 충격을 주다.’라는 뜻이다. 이 관용구에 나오는 ‘한 방’이라는 낱말을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에 망설임 없이 끌어들인다. 여기의 ‘한 방’을 대체할 적절한 낱말이 안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 수필집 모든 작품에는 ‘한 방’이 있다. 이번 민혜 수필집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는 해드림출판사에서 수필집으로는 처음으로 공모를 통해 기획한 수필집이다. 50여 권 분량의 작품이 들어왔는데, 민혜 수필가는 곧바로 응모를 하여, 다른 이의 작품보다 제일 먼저 읽게 되었다. 작품을 읽어가면서 ‘발굴’이라는 말이 떠올랐고, 어쩌면 이 작품을 선정하게 될지..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

다음 달이면 내 작품집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제목에 아직 변수는 있지만)가 출간된다. 출판사에서 공모한 기획출판 수필집이라 표제도 출판사에서 정한 것이다. 56편 작품은 저마다 다른 내용이 담겨 있어 하나의 표제에 담기는 어려운 면도 있으나, 애틋한 여운을 주는 제목에 만족한다. '슬픔이 웃는다'로 해달라고 해볼까 싶었으나 모든 걸 일임하기로 했다. 그가 떠난지 어제로 10년이다. 땡볕이 살갗을 찌르는 한낮에 성묘를 갔다. 주말이라 차가 막혀 오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10년 전 6월엔 저 먼데로 이사가느라 그도 나도 고생 많았다. 나는 이제 기존의 내 작품으로부터 이사를 가야한다. 아직 인쇄도 하기 전이지만, 미지의 독자들과 새로운 만남을 기대해본다.

촛불의 죽음

새벽에 평소처럼 촛불을 켜놓고 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촛물이 촛대 밖으로 주루룩 흘러내렸다. 초의 테두리는 둥근 담장을 두른듯이 돼 있었기에 의아하여 나는 촛불 곁으로 다가갔다. 초가 거의 닳아가고 있긴 했지만 아직 2센티가 넘게 남아 있는데, 촛농이 흘러내린 건 초의 한쪽 옆구리가 터져 거기서 흐른 거였다. 초는 무생물이지만 불을 켜는 순간 불꽃을 내면서 생명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초가 이제 수명을 다해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초의 몸체는 기형으로 찌그러져 있었다. 그게 마치 몸이 병들어 망가진 것처럼 보였다. 전엔 초가 조금 밖에 남지 않으면 지레 버리고 새 초를 켜놨지만 오늘은 그 촛불과 함께 한 시간이 떠올라 몽당연필처럼 닳아진 초라도 함부로 버리기가 싫었다. 그래서..

거리, 거리들

거리란 떨어짐이다. 간격이다. 늘 붙어 살 수만도 없는 게 인간이지만 거리가 멀어지면 쓸쓸하고 추워진다. 각박한 현대인들은 이제껏 거리를 좁히려 애쓰며 살아왔다. 부모 지식간에. 친지와 지인들 간에... 그러던 게 2020년 2월이 지나면서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사회적 거리 두기'이다. 거리에 나가도 사람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놓고 걸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확인 바이러스 보유자가 되어 버렸기에 곁에 오는 걸 꺼려했다. 사람 '인'자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기대는 형상인데 이제 사람들은 서로 기대면 안되었다. 나는 손녀를 맞이할 때 전처럼 포옹을 하지 않았다. 아들네 집에서도 나는 가급적 가족들과 거리를 두었다. 이젠 아들네 집에도 발길을 끊었고, 친구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