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촛불의 죽음

tlsdkssk 2020. 6. 4. 19:27

새벽에 평소처럼 촛불을 켜놓고 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촛물이 촛대 밖으로 주루룩 흘러내렸다.
초의 테두리는 둥근 담장을 두른듯이 돼 있었기에  의아하여 나는 촛불 곁으로 다가갔다.
초가 거의 닳아가고 있긴 했지만 아직 2센티가 넘게 남아 있는데,
촛농이 흘러내린 건 초의 한쪽 옆구리가 터져 거기서 흐른 거였다.
초는 무생물이지만 불을 켜는 순간 불꽃을 내면서 생명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초가 이제 수명을 다해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초의 몸체는 기형으로 찌그러져 있었다.
그게 마치 몸이 병들어 망가진 것처럼 보였다.

전엔 초가 조금 밖에 남지 않으면 지레 버리고 새 초를 켜놨지만
오늘은 그 촛불과 함께 한 시간이 떠올라 몽당연필처럼 닳아진 초라도 함부로 버리기가 싫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마침내 심지가 다 타서 불이 꺼져갈까지.
촛불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나 역시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느라 피부는 지금보다 더 늘어지고
주름으로 덮혀 육신이 초라하게 사위어갈 것이다.
그래도 내면의 불빛만은 잃지 않고 살다가 어느 날 숨이 꺼지기를 희망한다.
그 지향을 두고 죽는 날까지 기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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