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 여우하고는 살아도, 곰하고는 못 산다는 말이 있다. 혈기등등하던 젊은 날엔, 차라리 곰이 더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우란 얌체스럽고 진실성이 없으니, 좀 우직하긴 해도, 곰이 더 났지 않은가, 했다. 한데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여시가 좋아진다. 뚱하고 잼 없는 건 싫다. 가벼우면 좀 어떠리. 일단.. 내 마음 한자락 2005.09.24
미영이 3 미영인 오늘도 내 주변을 얼씬거리며 뭘 만드나 지켜본다.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갔던 수녀님은 귀가하자 마자 접시를 들고 내게로 오셨다.(이곳은 늘 뷔페식이다) 공복으로 검사 받고 오후 3시 넘어 오셨으니 오죽 시장하셨으랴. 자칭 '국보' 수녀님은 들깨 넣어 걸죽히 끓인 토란국을 한 대접 드신 후.. 내 마음 한자락 2005.09.22
미영이 2 추석 때 집에(혹은 친척집에) 갔던 내 일터의 아이들이 저마다 먹거리를 싸들고 왔다. 과일 봉지며, 꿀이며, 얼음에 채운 생닭이며... 이곳에서 신세지고 있는 걸 조금이라도 갚고자 함이었으리라. 그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미영이가 혼자말을 한다. "아, 닭고기 맛있겠다." 내가, "닭고기가 먹고 싶.. 내 마음 한자락 2005.09.21
미영이1 미영(가명)이는, 내가 일하는 <* * *의 집>에 살고 있는 막내로, 초등학교 5학년이다. 추석을 맞아 다른 애들은 모두 자기 집이나 친척 집으로 명절을 쇠러 갔는데, 미영이만은 갈 곳이 없어 수녀님과 지냈다. 오늘 들르니, 미영인 자기 몸피만한 핑크색 곰 인형을 안고 있다. 원장 수녀님이 주신 추석.. 내 마음 한자락 2005.09.20
무릎에 찍힌 도장 지금 내 양쪽 무릎엔 장미빛 도장이 찍혀 있다. 난 '검'을 두 개나 받은 것이다. '검'이 뭔고 하니, 초둥학교 시절, 선생님은 숙제 검사를 하며 '검'이라고 된 파란 도장을 찍어 주셨다. 숙제를 엉터리로 해 온 아이들에겐 간혹 '검' 도장을 생략하시기도 하여, 노트에 '검'자가 찍혀야만 우린 안심이 되었.. 내 마음 한자락 2005.09.20
몰입의 즐거움 어제는 일터에서 무려 40분이나 초과 근무를 하였다. 바깥 일을 보고 돌아오신 수녀님께서, "안나씨, 여태 안 가셨어요?" 하며 놀라워 했을 때야 비로소 내가 있는 곳이 우리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수선한 식품 선반 정리를 하다가, 착착 정리되는 즐거움에 빠지다 보니 그만 피곤한 것도 잊.. 내 마음 한자락 2005.09.15
모기 때문에 혹사시켰던 몸을 쉬고자 일찍 잠에 들었건만, 모기 땜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조금만 꿈쩍거리면 단잠에 들었을 걸, 귀찮아서 걍 누워버린 게 화근이었다. 하긴 자리에 누우며 갈등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모기약을 피워? 말어?' 했다가는, 오늘은 비가 많이 와서 모기 넘들 다 쓸려갔을 거야. 설령 있.. 내 마음 한자락 2005.09.14
사람이 지치는 것은 사람이 지치는 것은 부지런히 일 할 때가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라는 말이 있다. 일을 하되, 열정과 애정을 갖고하면, 아무리 힘든 일을 하여도 힘든 줄 모르는 걸 많은 이들이 경험했으리라. 어제 알바겸 봉사를 하러 갈 때만 해도 내 몸은 잔뜩 지쳐 있었다. 늦더위 때문인지, 아니면 전날 성.. 내 마음 한자락 2005.09.13
초록 침대 용인 천주교 묘지로 친정 아버지 성묘를 가면 성직자 묘지를 꼭 들러 오곤 한다. 그곳은 언제 가보아도 늘 한적하고 조용하여 쓸쓸하기조차 한다. 그 쓸쓸함이 주는 고즈넉한 평화가 좋아 우정 그곳을 찾기도 하지만, 그곳은 내가 무척 존경하던 레오 신부님(상도동 주임을 하셨던 )이 영면해 계시는 .. 내 마음 한자락 2005.09.12
아일랜드 주말인 어제 영화 '아일랜드'를 보았다. 전 날 과로하여 혹시 졸지나 않을까 하고 우려 섞인 기분으로 극장 안으로 들어갔으나, 웬걸, 첨부터 눈이 반짝 해진다. 그 영화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었다. 물론 시놉시스 같은 걸 본 적도 없었고. 아들이 표 두장을 주며 '좀 무서울 거에요.' 했던 게 그 영화에 .. 내 마음 한자락 2005.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