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명동 , 내 영혼의 고향 1

tlsdkssk 2021. 2. 27. 08:33

어제, 간만에 명동 땅을 밟아보았다.

가톨릭평화방송, 평화신문사에서 주최한 신앙수기 시상식에 가기 위함이었는데,

상을 받는 날인데다가  명동에 걸맞는 차림을 하려고 모처럼 굽 있는 구두를 신고 나섰다.

아파트를 나서는데, 아무래도 발걸음이 불편했다.

안되겠다 싶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 단화로 바꿔 신고 다시 나섰다.

그러느라 명동 역에 도착했을 땐 시간 여유가 많질 않았다. 뛰기 시작했다.

한데 칩거기간의 운동부족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노령이 된 내 체력을 증명이라도 해주겠다는 듯 숨이 턱턱 막혀왔다.

미사를 먼저 드리고 시상식을 한다 했으니 늦으면 안될 일이었다. 게다가 평화방송 성당이라 장소도 협소하지 않은가.

 

명동은 내 영혼의 고향이다. 4살 때 명동성당에서 영세받은 이후 처음 접한 고딕 양식의 성당은 내게 신천지를 열어주었다. 색색으로 영롱한 스테인드그라스의 신비한 아름다움과 장엄하고도 성스러운 파이프 오르간 소리, 그레고리안 성가와 라틴어 미사(그 때는 미사의 일부 기도문을 라틴어로 했다).....  

매주 미사를 다닐 때마다 바라보던 명동거리의 활기로움과 수많은 양장점들과 장안의 멋쟁이들......

유년기부터 사춘기 초입까지 내 정신의 기저엔 이런 서구적인 정서들이 그득 쌓여갔다.

그 때 내 머리속엔 예수님과 성모님과 수호천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두렵거나 위기를 느낄 때 나는 그 분들을 불러대었다.

어제도 시상식에 지각할까봐 예수 마리아를 찾다가 수호천사님을 향해

"당신의 날개를 저에게도 달아주세요. 늦으면 안되고, 뛰다가 자칫 넘어지면 늙은 저는 큰일 나니까요...."

하면서 달려갔다. 다행히 늦지 않았다. 넘어지지도 않았다. 

 

이번엔 대상을 받은 게 아니라서 실은 기분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때문에 집을 나서면서도 덤덤한 기분이었다.

한데 미사가 시작되고, 화답송에서 "주님, 당신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하는 대목이 나오는 순간 콧날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절제되지 않았다.

처음엔 뒷자석에 앉아 있었는데,  맨 앞줄로 가라해서 내 자리는 신부님이 바로 코 앞에 보이는 위치였다.

그런데 대책없는 눈물이 쏟아지니 이를 어쩌면 좋은가. 눈물이 나오면 콧물은 절로 나오게 마련이라 코를 풀어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었다. 그나마 마스크로 가려 있어 줄줄 흐르며 번들거리는 콧물을 숨길 수 있음은 다행한 일이었다. 나는 미사 내내 손수건을 두 눈에 들이대고 뗄 줄을 몰랐다. 참으려 하자 눈물은 더욱 격해지며 입에서 흑흑 소리까지 터져나오려 하였다.

"오, 주님, 제 눈물을 걷우어주소서. 당신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제가 당신 앞에 교만의 죄를 지었나이다. 제가 무어라고 수상의 감사를 드리지 못하고 투덜대었나이다. 제 비천함을 제가 알고 있나이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명동 복판을 지나오는데, 거리는 한산했다. 코로나 이후의 명동은 명동이 아니다.

군데군데 이빠진 듯 비어있는 상가. 

명동아, 명동아, 네 찬란했던 지난 날은 어디로 갔느냐? 

내 입에서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