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건강한 슬픔 / 강연호 건강한 슬픔 / 강연호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랜만이라는 안부를 건넬 틈도 없이 그녀는 문득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그저 침묵했다 한때 그녀가 꿈꾸었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아니었다 나도 그때 한 여자를 원했었다 그녀는 아니었다 그 정도 아는 사이였던 그녀와 나는 그 정도 사이였기에 오래 .. 詩가 흐르는 상자 2009.11.12
애기 웃음 [詩로 여는 아침] 애기의 웃음 서정주 애기는 방에 든 햇살을 보고 낄낄낄 꽃웃음 혼자 웃는다. 햇살엔 애기만 혼자서 아는 우스운 얘기가 들어 있는가. 애기는 기어 가는 개미를 보고 또 한번 낄낄낄 웃음을 편다. 개미네 허리에도 애기만 아는 배꼽 웃길 얘기가 들어 있는가. 애기는 어둔 밤 이불 속에.. 詩가 흐르는 상자 2009.11.06
[스크랩] 모습 / 오규원 모습 / 오규원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 만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詩가 흐르는 상자 2009.10.30
[스크랩] 바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 조용미 바람은 어디에서 생겨 나는가 / 조용미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 나의 내면이 고요할 때 바람은 어디에 있었나 생나무 가지가 허옇게 부러진다 버즘나무 널따란 잎사귀들이 마구 떨어져 날린다 개태사 앞 향나무는 뿌리째 뽑혀 쓰러졌다 마당에 기왓장이 나뒹군다 바람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 詩가 흐르는 상자 2009.10.30
[스크랩] 삶의 방전 / 이숙이 잠 못 드는 깊은 밤 우연처럼 심장이 부르르 떨린다 순간 돌덩이를 끌어 안고 심연 속으로 빠져든다 어쩌면 이 속에 남은 에너지가 다 방전되었을지도 몰라 손에 와 싸늘하게 닿는 죽음의 예감 겉을 싸고 있는 굳은 외피와 고갈된 무딘 감정에 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을 가늠할 수가 없다 삶의 모니.. 詩가 흐르는 상자 2009.10.30
[스크랩] 사랑 글렌 굴드 :: 박후기 침묵은 말 없는 거짓말,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살아야 하는 여자와 살고 싶은 여자가 다른 것은 연주와 감상의 차이 같은 것 건반 위의 흑백처럼 운명은 반음이 엇갈릴 뿐이고, 다시 듣고 싶은 음악은 다시 듣고 싶은 당신의 거짓말이다 사랑 글렌 굴드 / 박후기 - 박후기 시집『내 귀는 거짓말을 .. 詩가 흐르는 상자 2009.10.30
[스크랩] 나는 별아저씨 / 정현종 나는 별아저씨 / 정현종 나는 별아저씨 별아 나를 삼촌이라 불러다오 별아 나는 너의 삼촌 나는 별아저씨. 나는 바람남편 바람아 나를 서방이라고 불러다오 너와 나는 마음이 아주 잘 맞아 나는 바람남편이지. 나는 그리고 침묵의 아들 어머니이신 침묵 언어의 하느님이신 침묵의 돔(Dome) 아래서 나는 .. 詩가 흐르는 상자 2009.10.30
[스크랩] 오후 7시 / 조병화 우리들의 존재는 유규한 시간에 떠 있는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 -조병화- 시를 경멸하면서 나를 회의하면서 거리로 간다 거리를 비벼간다 주로 헛된 낭만을 걸어가며 밤을 기다리는 사람의 연인이 되고 싶다 낯 없는 여인들에게 향수를 느낀다 먼 나라의 소도시를 걸어가는 생각이다 휘파람을 불고 싶.. 詩가 흐르는 상자 2009.10.29
[스크랩] 연인 / 정호승 연인 -정호승- 나의 연인은 나의 손을 놓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어디에서든, 어떤 모습으로든 나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미안하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표현못하는 사람일지라도, 나의 손을 잡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사랑이 진심임을 아는 .. 詩가 흐르는 상자 2009.10.27
[스크랩] 사랑이 나가다 / 이문재 사랑이 나가다 / 이문재 손 이야기 1 손가락이 떨리고 있다 손을 잡았다 놓친 손 빈손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랑이 나간 것이다 조금 전까지는 어제였는데 내일로 넘어가버렸다 사랑을 놓친 손은 갑자기 잡을 것이 없어졌다 하나의 손잡이가 사라지자 방 안의 모든 손잡이들이 아득해졌다 캄캄한.. 詩가 흐르는 상자 2009.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