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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

다음 달이면 내 작품집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제목에 아직 변수는 있지만)가 출간된다. 출판사에서 공모한 기획출판 수필집이라 표제도 출판사에서 정한 것이다. 56편 작품은 저마다 다른 내용이 담겨 있어 하나의 표제에 담기는 어려운 면도 있으나, 애틋한 여운을 주는 제목에 만족한다. '슬픔이 웃는다'로 해달라고 해볼까 싶었으나 모든 걸 일임하기로 했다. 그가 떠난지 어제로 10년이다. 땡볕이 살갗을 찌르는 한낮에 성묘를 갔다. 주말이라 차가 막혀 오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10년 전 6월엔 저 먼데로 이사가느라 그도 나도 고생 많았다. 나는 이제 기존의 내 작품으로부터 이사를 가야한다. 아직 인쇄도 하기 전이지만, 미지의 독자들과 새로운 만남을 기대해본다.

촛불의 죽음

새벽에 평소처럼 촛불을 켜놓고 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촛물이 촛대 밖으로 주루룩 흘러내렸다. 초의 테두리는 둥근 담장을 두른듯이 돼 있었기에 의아하여 나는 촛불 곁으로 다가갔다. 초가 거의 닳아가고 있긴 했지만 아직 2센티가 넘게 남아 있는데, 촛농이 흘러내린 건 초의 한쪽 옆구리가 터져 거기서 흐른 거였다. 초는 무생물이지만 불을 켜는 순간 불꽃을 내면서 생명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초가 이제 수명을 다해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초의 몸체는 기형으로 찌그러져 있었다. 그게 마치 몸이 병들어 망가진 것처럼 보였다. 전엔 초가 조금 밖에 남지 않으면 지레 버리고 새 초를 켜놨지만 오늘은 그 촛불과 함께 한 시간이 떠올라 몽당연필처럼 닳아진 초라도 함부로 버리기가 싫었다. 그래서..

아, 수국

대박 수국! 금년 수국 농사는 대풍이다. 놀라워서 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꽃 한 송이가 내 손 네개로 감싸도 모자랄 지경. 꽃을 보고 있노라면 환희가 가슴에서 폭발하는 것 같다. 신기한 건 얘들이 피어나면서 내게 좋은 일이 연달아 터졌다는 것, 흰 수국은 원래는 청색 수국을 내가 삽목해서 3년만에 처음 꽃을 피운 것이다. 토질 때문에 흰색 수국이 되고 말았는데, 어마어마한 크기 때문에 얘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터질 듯 그득해진다. 이젠 꽃송이가 부풍어 내 손 네개로도 감싸기가 힘들다. 내가 삽목해서 키운 꽃이라 이름을 '안나'라고 정했다.

살며 사랑하며 2020.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