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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풍경, 시간의 풍경/김훈

여자의 풍경, 시간의 풍경 - 전군가도/사이판 - 사쿠라꽃 피면 여자 생각난다. 이것은 불가피하다. 사쿠라꽃 피면 여자 생각에 쩔쩔맨다. 어느 해 4월 벚꽃 핀 전군가도全群街道(전주-군산 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다가, 꽃잎 쏟아져 내리는 벚나무 둥치 밑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나는 내 열려지는 관능에 진저리를 치면서 길가 나무둥치에 기대앉아 있었다. 나는 내 몸을 아주 작게 옹크리고 쩔쩔매었다. 온 천지에 꽃잎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나무둥치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바라보면, 만경 평야의 넓은 들판과 집들과 인간의 수고로운 노동이 쏟아져 내리는 꽃잎 사이로 점점이 흩어져 아득히 소멸되어 가고, 삶과 세계의 윤곽은 흔들리면서 풀어지면서, 박모의 산등성이처럼 지워져 가는 것이었는데, 세상의 흔적들이 지워져 버..

살며 사랑하며 2020.04.23

식물의 정신 세계

생명의 문을 여는 열쇠,식물의 비밀 피터 톰킨스.크리스토퍼 버드 식물학은 현존하는 것이든 멸종한 것이든 식물의 용도,종별,구조,생리,지리적 분포등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런데 충분히 매력적일 것 같은 이 학문이 처음부터 끝없는 라틴어의 장례행렬처럼 지 겨운 분류학이 되어야 했을까? 아직도 젊은 식물 학자들은 중앙아프리카나 아마존 의 정글에서 새로운 식물을 찾으려 악전고투를 하고 있지만 기다란 이름을 가진 35만 가지 식물들의 명단에 새로운 하나가 등재되겠지만 정작 무엇이 식물을 살아있게 하고 또 그것들이 왜 살아있는가의 문제는 식물학의 관심 밖의 문제처럼 보인다. 1966년 미국에서 거짓말 탐지기를 연구 중이던 백스터는 검류계의 전극을 화초의 잎사 귀에 대어보고 싶은 충동에 검류계를 식물에 대고 물을 주어..

스크랩 2020.04.23

글을 남기는 것은 인생을 연장하는 것/주철환

스타PD 출신 주철환, 5년만에 신간 에세이 유한한 인생에서도 글은 무한 모든 글은 일종의 유서와 같아 책 16권 낸 것이 인생 가장 잘한 일 쭉 글 쓰며 재미있는 판 만들고파 주철환 아주대 교수가 최근 출간한 자신의 열여섯번째 책 '재미있게 살다가 의미있게 죽자'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재미있게 살다가 의미있게 죽자/주철환/마음서재 "글은 내가 사라져도 남잖아요. 글을 남긴다는 것은 내 인생을 연장하는 것이나 다름 없어요. 내가 떠난 후에 손자가 내 글을 읽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다면 그게 가보죠. 책이 많이 팔리는 것도 좋겠지만 무엇보다 제 한계를 넘어 수많은 사람과 책으로라도 소통하고 다정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커요." 대한민국에서 '스타 PD'라는 수식어가 처음으로 달린 사람..

살며 사랑하며 2020.04.22

고양이 영화

외화 '선생님과 길고양이'(감독 후카가와 요시히로) (사진=찬란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에 마음의 벽을 쌓았다.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말이다. 그러다 보니 그 벽 안에 자신조차 갇혔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벽을 조금씩 건드리는 건방진 생명체가 나타난다. 자신을 툭툭 건드는 생명체 '길고양이'에게 마음을 내어주며 닫았던 마음도 서서히 열린다. '선생님과 길고양이'는 그 과정을 그려낸 영화다. '선생님과 길고양이'(감독 후카가와 요시히로)는 사별한 아내를 잊지 못하는 전직 교장 선생님(이세이 오가타)이 마을 사람들과 실종된 길고양이를 찾으며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가는 따뜻한 감성 드라마다. 아내와 사별 후 슬픔에 빠진 교장 선생님 앞에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길고양이가..

영화 2020.04.12

환경 위기

코로나19 확진자가 전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감염병 위험 수준에 따른 가장 높은 경보단계인 팬데믹을 선언했습니다. 이제는 단순 공중 보건 차원의 위기가 아닌 전방위적으로 모두가 이 싸움에 맞서야 한다고 했죠. 코로나19로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제약이 걸리고 유통, 자영업, 교육, 주식 등 국내 경기는 직격탄을 맞고 있습니다. 코로나-19상황과 기후변화, 생소하시죠? 이 둘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이번 코로나19가 박쥐에서 인간으로 옮겨온 것처럼 전염병은 '매개체(코로나19 매개체는 박쥐)'를 통해 질병이 옮겨집니다. 생태계 안에서 숙주, 매개체, 병원체가 상호작용을 하는데 기후변화는 바로 이런 상호작용에 있어 '환경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기후변화로 온도나 강수량, 습도가 달라지..

살며 사랑하며 2020.03.27

거리, 거리들

거리란 떨어짐이다. 간격이다. 늘 붙어 살 수만도 없는 게 인간이지만 거리가 멀어지면 쓸쓸하고 추워진다. 각박한 현대인들은 이제껏 거리를 좁히려 애쓰며 살아왔다. 부모 지식간에. 친지와 지인들 간에... 그러던 게 2020년 2월이 지나면서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사회적 거리 두기'이다. 거리에 나가도 사람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놓고 걸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확인 바이러스 보유자가 되어 버렸기에 곁에 오는 걸 꺼려했다. 사람 '인'자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기대는 형상인데 이제 사람들은 서로 기대면 안되었다. 나는 손녀를 맞이할 때 전처럼 포옹을 하지 않았다. 아들네 집에서도 나는 가급적 가족들과 거리를 두었다. 이젠 아들네 집에도 발길을 끊었고, 친구도 ..

박재삼 시

박재삼시인 시상 10편을 감상해 보기 1 풀잎의 노래 / 박재삼 천지에 파랗게 풀잎들이 솟아 무슨 간절한 할말이라도 있는 듯 조용한 아우성을 지른다 네, 네, 네, 야단스러이 일제히 소리하며 일어나고 올망졸망 머리를 맞대고 환호를 치며 솟아오른다 아,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들은 시끄러운 말을 피하고 오직 바람 속에서 햇빛 속에서 몸을 통째로 내맡기고 있나니 파란 것이 어떻게 빛나는 것과 연결될 수 있는지 그것은 어릴 때부터 느껴온 수수께끼였어라 그리하여 그들은 드디어 바람에 흐르고 햇빛에 젖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해내면서도 그것을 다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묵묵한 가운데 치르는구나. 2 무봉천지(無縫天地) 박재삼 저저(底底)히 할말을 뇌일락하면 오히려 사무침이 무너져 한정없이 멍멍한 거라요. 문득 때까..

아빌라의 데레사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의 기도 9단계 이런바 수덕단계에 속하는 ① 구송기도 ② 묵상기도 ③ 정감기도 ④단순함의 기도를 정리해보자. 인간을 크게 몸과 정신으로 나눈다면 입으로 외우는 구송기도는 먼저 몸에 가까운 것이다. 정신 영역을 지(知)·정(情)·의(意)로 구분할 때 생각이 주를 이루는 묵상 기도는 아무래도 "지"에 가깝다. 그렇다면 정감기도 "정"에, 의지적 요소가 강한 단순함의 기도는 "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단순함의 기도는 분심이 들 때마다 다시 단순함으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은 바로 의지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기도하는데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단순성이다. 그리고 단순성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요소는 반복성이다. 분심이 단순함의 상태를 방해할 때 다시 단순해지기 위해서는 그 단순함으로 되..

살며 사랑하며 2020.03.07

아빌라의 데레사

테레사(1515-1582)는 ‘영혼의 성’에서 인간 내면의 신비스런 세계를 한 채의 성(城)에 비유해 설명한다. 그 성안에는 7개의 방(궁방)이 있고, 각 궁방으로 옮겨감에 따라 영혼의 상태가 변화되고 진보한다고 한다. ‘궁방’(안식처, Morada)이 라는 것은 하나님과인간이 주인공이 되어 만드는 생생한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써,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다. 예수님의 형상을 온전히 닮기까지의 점진적인 과정(단계)들을 일걷는다. 제1궁방 첫 궁방에 들어가는 관문은 무엇보다도 ‘기도와 성찰’이다. 이 단계의 영혼은 은총 상태에 있기는 하지만 아직 세속적인 것에 크게 집착하기 때문에 기도 중에도 갖가지 상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에게 이르기 위한 고요를 확보하지 못하기에 묵상기도를 하기 어렵다. 이런 자들은..

민혜의 골방 2020.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