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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의 리얼리즘

욕설의 리얼리즘 신영복 교도소에 많은 것 중의 하나가 ‘욕설’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우리는 실로 흐드러진 욕설의 잔치 속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저도 징역 초기에는 욕설을 듣는 방법이 너무 고지식하여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곧이곧대로 상상하다가 어처구니없는 궁상(窮狀)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기 일쑤였습니다만, 지금은 그 방면에서도 어느덧 이력이 나서 한 알의 당의정(糖衣錠)을 삼키듯 이순(耳順)의 경지에 이르렀다 하겠습니다. 욕설은 어떤 비상한 감정이 인내력의 한계를 넘어 밖으로 돌출하는, 이를테면 불만이나 스트레스의 가장 싸고 ‘후진’ 해소 방법이라 느껴집니다. 그러나 사과가 먼저 있고 사과라는 말이 나중에 생기듯이 욕설로 표현될만한 감정이나 대상이 먼저 있음이 사실입니다. 징역의 현장인 이 곳이 곧 욕..

살며 사랑하며 2021.02.11

당신/ 고양이에 관한 시

'당신' 이승훈 ​ 고양이처럼 살고 싶어라 엎드려 있고만 싶어라 고운 피 흘리는 마음 복사꽃 복사꽃은 지는데 ​ 어디로 가고만 싶어라 이 어두운 마음 밝아오는 해이고 싶어라 아무리 채찍이 갈겨도 ​ 그리움은 끝나지 않어라 당신 얼굴에 입맞추고 싶어라 하아얀 돌이고 싶어라 파아란 구름이고 싶어라 ​ 모조리 버리고 오늘 바쁘게 명동을 걸어가면 바람부는 왕십리를 걸어가면 ​ 고양이처럼 살고 싶어라 언제나 다른 나라에 계신 당신 고개 한번 끄덕이면 복사꽃 복사꽃은 지는데 이승훈 시인 -당신- [출처] 고양이에 관한 시- 이승훈 시인의 '당신'|작성자 소보로

법정 빠삐옹 식탁

먹고 사는 것이 정말 작은 일이 아니다. 자취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먹는 일이 즐겁기보다 귀찮게 여겨질 때가 많다. 먹지 않으면 병들어 쓰러질 테니 우선 그것을 면하기 위해 담아두는 것이다 그리고 남기면 변하므로 먹어치우는 것이지. 누가 혼자 먹기 위해 부지런을 떨고 솜씨를 발휘하겠는가. 잘 얻어먹으려면 흥청거리는 도시의 절간에 주저앉으면 된다. 산에 들어와 나는 식탁을 맨 먼저 만들었다. 방안에서 발우(鉢盂)를 펴고 공양을 하려니까 몇 번씩 드나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랐다. 부엌에서 먹으려면 식탁이 필요했다. 헌 판자 쪽을 모아 조리대로도 쓸 수 있게 식탁을 만들고 의자는 참나무 장작으로 맞춰 놓았다. 이런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려니 문득 ‘빠삐용’의 처지가 떠올라 ‘빠삐용 식탁’ 이라고 이..

살며 사랑하며 2021.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