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법정 빠삐옹 식탁

tlsdkssk 2021. 2. 6. 10:14

먹고 사는 것이 정말 작은 일이 아니다.
자취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먹는 일이 즐겁기보다 귀찮게 여겨질 때가 많다.
 
먹지 않으면 병들어 쓰러질 테니
우선 그것을 면하기 위해 담아두는 것이다
그리고 남기면 변하므로 먹어치우는 것이지.
 
누가 혼자 먹기 위해 부지런을 떨고
솜씨를 발휘하겠는가.
잘 얻어먹으려면
흥청거리는 도시의 절간에 주저앉으면 된다.
 
산에 들어와 나는 식탁을 맨 먼저 만들었다.
방안에서 발우(鉢盂)를 펴고 공양을
하려니까 몇 번씩 드나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랐다.
 
부엌에서 먹으려면 식탁이 필요했다.
헌 판자 쪽을 모아 조리대로도 쓸 수 있게
식탁을 만들고 의자는 참나무 장작으로 맞춰 놓았다.
 
이런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려니
문득 ‘빠삐용’의 처지가 떠올라 ‘빠삐용 식탁’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끝없이 탈출하려는 사나이.
불의와 억압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그는 무한한 시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했었다.
 
내 빠삐용 식탁 앞에는 이런 글씨가 쓰여 있다.
‘먹이는 간단명료하게’
말하자면 내 암자의 부엌 훈인 셈이다.
 
“어디 부엌뿐이랴” 적어도 먹는 일에만은
번거롭고 싶지 않아 낙서해 놓은 것이다.
 
어쩌다 가짓수가 많은 식탁을 대하면
생각이 흐트러져 맛을 잃게 되는 게
우리네 식성이다.
 
친구들은 내 간단명료한 ‘먹이’를 보고
건강을 염려하지만 건강이란 반드시 먹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지리산에서 한 해 겨울을 아무런 부식도 없이
순전히 소금과 간장만으로
그것도 하루 한 끼만 먹으면서 지낸
건강한 경력을 나는 가지고 있다.
 
명색이 수도승이란 주제에 먹을 것 다 먹고
자고 싶은 잠 다 자면서 어떻게 수도를 한단 말인가.
현재의 식사만으로도 고맙고 과분할 뿐이다.
 
해인사에 있는 한 道伴(도반)이 밥 지어줄
공양주를 한 사람 보내주겠다 했지만
먹이뿐 아니라 사는 것도
간단 명료히 홀가분하게 살고 싶어
모처럼의 호의를 사양하고 말았다.
 
- 법정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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