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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거리들

거리란 떨어짐이다. 간격이다. 늘 붙어 살 수만도 없는 게 인간이지만 거리가 멀어지면 쓸쓸하고 추워진다. 각박한 현대인들은 이제껏 거리를 좁히려 애쓰며 살아왔다. 부모 지식간에. 친지와 지인들 간에... 그러던 게 2020년 2월이 지나면서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사회적 거리 두기'이다. 거리에 나가도 사람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놓고 걸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확인 바이러스 보유자가 되어 버렸기에 곁에 오는 걸 꺼려했다. 사람 '인'자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기대는 형상인데 이제 사람들은 서로 기대면 안되었다. 나는 손녀를 맞이할 때 전처럼 포옹을 하지 않았다. 아들네 집에서도 나는 가급적 가족들과 거리를 두었다. 이젠 아들네 집에도 발길을 끊었고, 친구도 ..

박재삼 시

박재삼시인 시상 10편을 감상해 보기 1 풀잎의 노래 / 박재삼 천지에 파랗게 풀잎들이 솟아 무슨 간절한 할말이라도 있는 듯 조용한 아우성을 지른다 네, 네, 네, 야단스러이 일제히 소리하며 일어나고 올망졸망 머리를 맞대고 환호를 치며 솟아오른다 아,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들은 시끄러운 말을 피하고 오직 바람 속에서 햇빛 속에서 몸을 통째로 내맡기고 있나니 파란 것이 어떻게 빛나는 것과 연결될 수 있는지 그것은 어릴 때부터 느껴온 수수께끼였어라 그리하여 그들은 드디어 바람에 흐르고 햇빛에 젖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해내면서도 그것을 다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묵묵한 가운데 치르는구나. 2 무봉천지(無縫天地) 박재삼 저저(底底)히 할말을 뇌일락하면 오히려 사무침이 무너져 한정없이 멍멍한 거라요. 문득 때까..

아빌라의 데레사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의 기도 9단계 이런바 수덕단계에 속하는 ① 구송기도 ② 묵상기도 ③ 정감기도 ④단순함의 기도를 정리해보자. 인간을 크게 몸과 정신으로 나눈다면 입으로 외우는 구송기도는 먼저 몸에 가까운 것이다. 정신 영역을 지(知)·정(情)·의(意)로 구분할 때 생각이 주를 이루는 묵상 기도는 아무래도 "지"에 가깝다. 그렇다면 정감기도 "정"에, 의지적 요소가 강한 단순함의 기도는 "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단순함의 기도는 분심이 들 때마다 다시 단순함으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은 바로 의지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기도하는데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단순성이다. 그리고 단순성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요소는 반복성이다. 분심이 단순함의 상태를 방해할 때 다시 단순해지기 위해서는 그 단순함으로 되..

살며 사랑하며 2020.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