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명동, 내 영혼의 고향 2

tlsdkssk 2021. 2. 28. 06:53

나는 명동파, 어쩔 수 없는 명동파, 명동을 사랑한다.

강남이 어쩌저니저쩌니 해도 지금의 강남과 예전 명동의 위상은 비할 바가 못된다.

강남이 대세라지만, 이젠 도농간의 격차도 좁아졌고, 서울 변두리도 갖출 건 다 갖춰진 세상.

강남에도 아파트, 서울 요소마다 아파트, 지방마저 고층 아파트 시대다.

지역마다 편의 시설과 백화점과 대형상가가 자리하고 있어 학군이나 집값만 신경쓰지 않는다면

굳이 강남을 선호할 이유도 많지 않다.  

그러나 내 어린 시절의 명동은 군계일학이요 별천지였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명동성당과 영락교회, 문화의 전당인 시공관(지금의 국립극장), 유행을 이끌어가는 호화로운 양장점과 구두방(금강제화를 비롯한) , 고려정, 한일관 같은 일류 음식점과 태극당 고려당 같은 고급 제과점, 한복을 곱게 입은 미모의 다방 마담이 있는 여러 다방들, 인근에 위치한 신세계 백화점과 미도파(지금의 롯데 백화점)....

명동 인근 충무로는 우리나라의 헐리우드 같은 곳이었으니 남한 땅에서 이 모든 걸 두루 갖춘 곳은  명동이 유일했다.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땅값이 제일 비싼 곳은 명동이라 하지 않는가.

나는 충무로와 명동 인근의 동네에서 사춘기 초기까지 살아왔기 때문에

내 정신의 토양은 명동의 입김으로 다져졌다. 또한 내가 명동파라는 사실에 은근한 자부심을 지니고 평생을 살아왔다.ㅣ

떄문인가 강남의 위상이 부상하며 사람들이 강남으로 쏠릴 때도 나는 친구들과 만남 장소를 곧잘 명동으로 잡곤 했다.

나의 명동은 명동은 물론 충무로 일대와 남대문까지의 권역을 의미했기에 명동만한 동네를 찾을 수가 없었다.

오래 전, 대구 동화사를 찾았을 때 나는 동화사의 규모를 돌아보며 돈을 발라놓은 듯한 불사의 흔적이 거북해서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적이 있었다. 절이란 모름지기 그윽하고 고색이 긷들여야 비로소 마음 자락을 편히 내려놓을 수 있겠는데, 당시 그곳은 요소마다 돈 냄새가 풀풀 풍겨나왔다. 돌에는 이끼가 끼고 거무티티한 세월이 박혀 있어야 운치를 더하는데, 그곳은  갖 건축한 석재들로 온통 눈이 부시고 하앴다. 노태우 시절이었으니 지금쯤은 고색이 창연해졌을까는 모르겠다만.

내 편견인지는 모르겠으나 강남의 느낌은 내가 동화사에서 받은 그것과 흡사하다.

강남과 비교하면 오늘의 명동은 초라하다. 그러나 강남은 명동의 오랜 역사를 이길 수 없다.

황혼이 되다 보니 나는 정신없이 큰 대형 매장보다는 동네의 작은 슈퍼마켓이 한 눈에 들어와서 좋은데, 

명동이 바로 동네 마켓 같은 곳이 돼버렸다. 골목 골목 누비며 쇼윈도를 훑다가 적당한 식당 골라 배를 채우고 

심심하면 신세계나 남대문으로 가서 상가를 쓸다가 남산 한 바퀴 돌아와도 좋으니 명동만한 곳이 또 있을까. 

'내 마음 한자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이 고맙던 날  (0) 2021.05.23
떠난 엄마의 서랍을 열고  (0) 2021.04.13
명동 , 내 영혼의 고향 1  (0) 2021.02.27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 이후  (0) 2021.02.21
혼자 사는 재미  (0) 2021.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