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 이후

tlsdkssk 2021. 2. 21. 07:11

한국인이라면 '말이 씨가 된다'라는 속담을 모르는 이는 없을 터.

2002년에, 나는 어떤 소설가에게 앞으로 책을 세권쯤 더 낼 생각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무슨 계획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고 막연히 그냥 툭 던져본 소리였다.

그랬더니 그녀는 택도 없다는 듯

"그럴 수 있을까요?" 했다.

나 또한 그냥 던져본 소리라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첫 작품집을 내고 난 뒤로 점점 책을 내기가 싫어져

원고 청탁에 응하며 발표하는 것으로 끝내겠다고 마음 굳게 먹기도 했다. 책 세권의 꿈은 날로날로 멀어지고 아침 이슬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한데 그로부터 18년 후, 놀랍게도 나는 예정에도 없던 두 번째 작품집을 상재했다.

<해드림 출판사>가 기획수필집 공모 한 것에 운좋게도 당선된 덕이었다.

  

2002년도에 첫 수필집을 냈을 무렵 광화문 교보 문고에서 그녀와 첫 만남을 가졌다.

그녀는 <문학동네>로 등단한 나보다 열살 쯤 아래의 작가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된 사이였다.

그녀가 먼저 자기 작품집을 보내왔기에 나도 내 수필집을 그녀에게 보내주었는데, 내 글을 읽은 뒤 한번 만나보고 싶다해서 갖게된 오프라인 데이트였다.

솔직하기론 나도 둘째가라면 서운할 사람인데, 그녀는 나보다 열배는 솔직하고 직진형이었다.

인터넷 까페에서 피차 문자로만 떠들어댔을 뿐 코빼기 한 번 보지 못하고 그날 처음 대면한 거였는데,

그녀의 첫 마디가 "기분 나뻐!"였다.  왜냐고 묻자 대답이, 내가 젊어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 입에선 그만 깔깔 웃음이 터졌다. 우리는 교보 근처 커피숍으로 옮겨 본격적인 썰을 풀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치 나를 취재하기 위해 나오기라도 한 듯 질문 공세를 퍼붓기 시작하더니

문체도 젊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내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 말 끝에 내가 그냥 툭 던진 소리가 책 세 권이었다.

작년 여름에 출간된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 덕에 이미 한 권은 찍은 셈이다.

그리고 금년에 또 한권을 출간할 예정이니 두 권이 달성된 셈이다. 이제 한 권만 더 내면 100% 달성인데,

나의 미발표(잡지에 발표는 했지만 단행본으론 미발표인) 작품 만으로도 책 한권은 너끈히 낼 수 있으니 한 권 더 내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다.

한데 이젠 다른 장르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소설, 소설이다.

그리고 앞으로 산문집을 낸다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볼 생각이다. 그러니 이제는 '세권 플러스 알파'로 수정해야 할 것 같다. 물론 하느님이 나를 당분간 살려두신다는 전제하에 하는 말이지만.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의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