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표현하지 않는 사람, 아웃

tlsdkssk 2020. 2. 14. 07:28


뭘 모르던 시절엔 말이 없는 사람을 속이 깊은 사람이라 여겼다. 나의 빛나는 국민학교 성적표 6년 실적은 우수수수수...로 일관 되었지만 6년 내리 따라 붙은 단점란에 말이 너무 없고 수줍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반면 장점란엔 사려가 깊고 남을 배려하는 어린이라 돼 있었다. 그러니 말이 적다는 건 사려가 깊어 그런 줄로만.

그 시절엔 친구 간에 호감을 표현하지 않아도 넘겨버렸다. 호의나 사랑이란 말에 있지 아니하고 행동에 있는 것이라 여긴 것이다.


한데 세월이 흐를수록 말 수가 적은 사람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주변의 그런 사람들을 관찰해보니 그들은 반드시 속이 깊어서 그런 게 아니라, 경솔한 성품이 아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말 보다 행동으로 하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정서가 메마르고 표현력이 결여돼 있거나, 사랑과 감사를 아예 느끼지 못하는 정서적 문제아거나 인격적 미숙아인 쪽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지난 시절, 나는 어려움에 처한 K를 오래도록 도와준 적이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늘어놓는 그녀의 고민을 들어주고(남의 고충을 자주 듣는 일은 대단한 고역이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와 나를 성가시게 하며 점심과 저녁까지 먹고 가도 이해하며 봐주고, 그녀의 어린 아들을 생각해 만원 버스 타지 말고 택시 타고 가라고 택시비도 찔러주었다. 돈을 빌려달라면 돈도 빌려주고, 집에 식용유가 두 병이면 한 병은 그녀에게 주기도 했다. 내가 넉넉해서 그런 건 결코 아니었다. 나도 당시 남편의 직장이 불안하여 빚을 지며 살아가던 시절이었으니까. 한데도 그녀는 내게 한 번도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너무 미안하고 염치가 없어 그런 줄로만 여기고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거라 이해했다. 평생을 겪어보니 그녀는 고마움은 표현하지 않으면서 불만이나 서운한 일들은 상세하게 기억하며 매우 격하게 표현하는 거였다. 이제 나는 그녀를 만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내성적인 아이로 성장했던 나는 자라는 과정에 자신의 성격적 문제점을 그런대로 극복하며 살아왔다. 사랑과 감사와 잘못에 대한 용서를 청하는 마음과 기쁨과 슬픔의 표현에 나는 솔직한 편이다. 하여 진정으로 사랑하는 대상에겐 남녀불문 내가 먼저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고, 미안함을 느끼는 대상에겐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

금년 1월엔 유난히도 춥던 어느 날 신탄진까지 내려가서 보고싶던 교우를 찾아가 근 30년만에 해후를 하기도 했다.

 

말이 없거나 표현하지 않는 사람은 지루하고 재미없다.

사람이란 가슴에 넘치면 표현하게 돼 있다고 생각한다.

설령 말 주변이 없어 매끄러운 수사를 동원하지 못한다 해도 눌변 속에서나마 그의 진심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진심이 넘친다면 문자나 편지로라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가 있다.

길지 않은 인생을 이런 지루한 이들과 어울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잘 웃고 잘 울고 사랑과 감사를 제때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이 좋다.

내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자화자찬? ㅎㅎ)

결점이 많음에도 나는 나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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