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
의무적으로 썼던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은 물론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그 이후의 일기는 태워버렸고, 지금 내게 남아 있는 일기장은 삼십대 전후에 기록한 것이다.
그것도 일부는 없애버리고 요행히 목숨을 부지한 몇권의 일기장만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서가에 꽂아 둔 그 일기장들을 어쩌다 들쳐볼 때면 기록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놀라곤 한다.
하얗게 지워졌던 기억들이, 내 머리 속에서 제멋대로 각색되었던 기억들이 일기장의 기록에 의해 명징하게 살아나
기억의 교통정리를 해주는 것을 보며 감동과 감탄을 금치 못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오늘 새벽엔 50대 시절의 일기를 보았다.
어느 날 내가, 대학생인 아들 넘에게 아르바이트 하면서 버는 돈이 얼마 인가 물었더니,
40만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의 책상에서 아르바이트로 받은 돈 낵수가 50만원이라고 적혀 있는 봉투를 본 적이 있었다.
녀석은 지 에미가 달라고 할까봐(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데도) 미리 선수를 치며 액수를 줄여 말한 것인데, 그 날의 쓰디 쓴 감정을 적어 놓은 사연이 보였다.
이미 잊혀진 기억들이라 그런지 내가 쓴 일기장을 보는데도 때론 남의 사연을 들여다보듯 재미있었다.
나는 간간이 블로그에 비공개로 일기를 적는다.
하지만 노트에 쓴 일기장을 들추는 것과 블로그의 일기를 들추는 것은 현저하게 다르다.
노트에 기록된 글은 아무 때나 편한 자세로 읽어내릴 수 있고 페이지도 앞 뒤로 바꿔가며 비교도 할 수 있지만
블로그에 적은 글은 컴퓨터를 열고 작업해야하기에 선뜻 열어보게 되지 않는다.
다시금 노트에 일기를 쓰고 싶다. 내 황혼기의 기록들을 적어보고 싶다. 연필 글씨로 적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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