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새집으로 가기 싫은 이유

tlsdkssk 2020. 2. 13. 07:32

어제 아들과 신축 아파트 모델 하우스를 구경하고 왔다.

그 이전에 그 아파트가 들어설 장소라는 김포 어느 곳의 동네도 둘러보았다.

주변엔 아트막한 야산이 있고 좀 걸어나가면 한강으로 연결되었다. 이건 상당히 매력있는 조건이나,

단점은 마을이 지저분해 보였고 창고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평생을 대단지 아파트에서 살며 쾌적하고 편의 시설이 잘 돼 있는 것에 익숙해 있는 때문인지,

새집이라는 것도, 천정에 에어컨과 공기청정기가 부착돼 있다는 것도, 수납장이 많다는 것도,

구조가 잘 빠졌다는 것도, 지금 사는 아파트를 팔고 그 집으로 이사 가면 많은 돈이 남는다는 것도 그리 매력으로

다가오질 않았다.

일단 베란다 확장형이라 화초를 기를만한 마땅한 공간이 없다. 내게 있어 화초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해서

화초 기르기에 적합하지 않은 집은 싫다.

베란다가 있어야 비가 오는 날 창문을 열고 비를 즐길 수 있는데 거기로 간다면 그런 낭만은 기대할 수가 없다.

또한 지금 사는 집은 창이 삼면으로 나 있어서 바람이 잘 통하고 내가 좋아하는 오로벨 소리를 덤으로 들을 수 있는데

새 집은 창문이 한 방향 밖에 없다.

내가 사는 동네엔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 백화점과 쇼핑몰과 영화관과 예술영화관과 대형 병원과 서점이 있고 지하철도 두 개 노선이 닿는데

거기로 가면 그런 혜택은 누리기 어렵다. 

아들은 엄마가 먼데서 오가는 걸 염려하여 자기 집과 가까운 동네로 왔으면 하는 눈치였으나 모델 하우스를 둘러보고 돌아가는 길에

나는 그 아파트에 대한 불만만 늘어놓았다.

"동네가 지저분해 보이더라" "대형 마트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할 거리고..."

아들은 멋적게 웃으며

"뭐, 꼭 이쪽으로 오시라는 건 아니에요."했다.

내 집으로 돌아오니 낡은 집과 낡은 가구들이 그리도 정겹게 보일 수 없었다. 역시 내 동네 내 집이 편하고 좋다.

드라마 세트장 같은 모델 하우스는 나같은 중늙은이가 살기엔 너무나 차갑다. 수납장이 많아 괜스레 쓸데 없는 물건들을 쟁여놓게 될 것 같고,

입주까지는 3년이나 남았는데, 3년 후 내가 어떤 형편이 돼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 집을 사랑한다. 베란다에서 내가 먹을 채소도 적당히 가꿀 수 있고. 바람이 잘 통해 풍경소리 들을 수 있고, 화분마다 더부살이 하는 잡초를 즐기는 기쁨도 있고.....

오늘 아침엔 닭고기 샌드위치를 해 먹고 나서 내가 먹은 음식 중 야채가 부족한 듯 하여 베란다에 나가 부추를 베어다 한 웅큼 먹었다.

부추는 베어도 또 자라서 사철 먹는다.  마트까지 가지 않아도 내 한 입은 충분히 먹는다.

부추 화분 옆에선 지난 가을에 묻어둔 튤립 구근이 5센티가 넘는 싹을 내밀었다.

이런 소소한 기쁨을 새 아파트의 즐거움과 바꿀 순 없는 노릇이다.

돈이 남은 들 그 돈으로 딱히 돈을 굴리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내가 젊다면 몰라도 이젠 많은 돈이 그닥 필요치 않아 자족하면서 살고 있다.

아들의 문제는 아들이 해결해나갈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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