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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세부적 전공은 한국 근현대 사상사입니다. 그걸 공부하면서 느낀 한 가지 재미있는 부분은, 개개인 사상의 놀라운 가변성 같은 것입니다. 한국적 근대의 시간이 압축적이고 너무나 빨랐던 만큼, 한 개인도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서로 상당히 다른 여러 사상을 순차적으로 표방할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월북해서 북조선에서의 다산 연구의 기반을 다진 최익한 (1897-?)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청소년, 청년기에는 남인계 (퇴계학맥) 성리학자이었다가 3.1 운동을 계기로 민족주의자가 됐다가 몇년 뒤에 다시 공산주의로 입문한 사람이었습니다. 월북해서 만약 1960년대까지 살아계셨다면 또 맑스-레닌주의에서 다시 주체사상으로 나아가셨겠죠? 하기사, 주체사상이라면 바로 떠오르는 게 김일성 주석이었지만, 그 역시 어린 시절의 기독교 민족주의에서 맑스주의로, 그리고 결국에는 주체사상으로 나아간 셈입니다. 좌익계열의 "사상적 발전"의 속도만이 눈부실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성리학자이었다가 천주교의 독실한 신자이자 민족주의자가 된 안중근 의사가 상징하는 한국 (초기) 민족주의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뭐, 민족주의 우파를 이야기하자면 사상적으로는 성리학에서 민족주의로, 종교적으로는 동학, 불교를 거쳐서 기독교로 도달한 백범 김구라면 가장 화려한 쪽에 속할 것입니다. 한 인간이 도대체 퇴계학에서 맑스주의로 어떻게 이렇게도 쉽고 빠르게 옮겨 탈 수 있을까요? 한 가지 이유리면, 비교적 쉽게 옮겨 타도 되는 베경에는 이 모든 종교와 사상들의 개인 심성론, 도덕론 등의 "가까움"이 있었습니다. 퇴계는 인욕을 막아 천도를 따르자 했다면 기독교 역시 원죄를 깨달아 원죄로 인한 욕망을 막아 하나님이 내리신 계명을 따르라 했고, 불교는 자리이타, 상구보리하화중생이라면 맑스주의도 자신을 포함한 모든 피억압자들의 공통적 계급 공익을 위해 헌신하고, 본인이 깨달은 사회의 유물론적 발전의 이치를 노농계급 사이에 유포시켜 계몽하자는 주의이었습니다. 그러니 탁사 최병헌 (1858-1927) 같은 철저한 한학자가 기독교인이 되고, 성암 김성숙 (1898-1969)이 불교 스님 노릇을 하다가 공산당원이 되고 그러셨죠. 주의/주장, 우주/세계관, 사회론 등이야 당연 각각 달랐지만, 공익 지향적이며 자기 희생적인 인간상을 내세우는 데에 있어서는 큰 차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유림 출신으로서는 기독교인이 되든 맑스주의자가 되든 혹은 아나키스트가 되든 개인적 차원에서는 별다른 위화감을 느낄 이유도 없었죠. 물론 공익 본위의 "이상" 뒤에는 얼마든지 온갖 개인적 사리사욕, 권력욕 등등이 다 도사릴 수도 있었지만, 적어도 "표방"하는 부분, 당위론들이 그랬다는 것이죠. 그런데 1978년부터 가장 철저하게 동아시아화된 사회주의 사상의 버즌이라고 할 수 있는 모택동주의가 중국에서 사실상 용도폐기되고, 1991년에 1920년대초반부터 한국 좌파에게 영감을 주어왔던 쏘련과 동구권이 최종적으로 멸망하고,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에 북조선에서 대대적 기근 사태 ("고난의 행군")가 벌어지고 1997-8년에 급기야 한국의 발전 국가가 신자유주의 국가로 변신되고...이 와중에서는 발전 국가의 (어용적인) "공동체" 논리와 함께 운동권의 민중 본위적 '공'의 논리도 다 그 의미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김문수/이재오/이영훈처럼 극우가 되지 않은 '민중' 진영의 생존자들의 상당수는, 사민주의자로 요구조절하거나 각종 '포스트' 담론 속에서 표류하고 있었고 그 수도 계속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대중"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이 거의 빠지는 대신에, 신자유주의로의 전환과 함께 대중적 지식 시장에 또 한 가지의 엄청난 '힘'이 그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바로 대중적 "심리학" 서적 내지 각종의 자기 계발서죠. 한국적 자기 계발서의 원조는 아마도 명치 시대 일본, 그리고 개화기/일제 강점기의 한국에 히트를 쳤던 스마일즈의 <자조론>일 겁니다. 그렇다면 중흥조 (?)는 데일 카네기 (1888-1955)의 <인간관계론>, <성공대화론>, <자기관리론> 등등일 것입니다. 시중에 팔리는 자기 계발서의 종류는 아마도 수천 개일지도 모르지만 그 핵심 주장들은 크게 봐서는 카네기의 논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너의 성공을 위해 남을 이용하라, 남을 제대로 이용하려면 늘 친절하고 배려하는 척해라, 되도록이면 둥글게 둥글게, 원만한 관계를 잘 관리해서 적절히 이용해라, 남의 환심을 칭찬 등으로 잘 사서 나중에 이용해라, 이 정도입니다. 뭐, 교언영색, 감언이설, 아부아첨으로 남의 환심을 사서 타자를 이용할 수 있다는 거야 이미 공맹 시대의 사람들도 알았을 걸요? 단,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는 소인배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도덕적으로 틀린 길이었습니다. 카네기는 사리사욕을 "성공"이라고 높여 부르고 이걸 공개적으로 개개인의 유일한 인생 목표로 설정한 거야말로 새로운 것이었다고 봐야 합니다. 사실 이런 의미에서는 "카네기주의"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예견(?)한 부분이 있었다고도 볼 수 있죠. 좌우간, 카네기의 후예라고 할 각종 자기 계발서 저작자들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접어들고 나서야 정말로 맹활약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계발서들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꽉 채운 것은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거든요. 사실 어떻게 보면 IMF 이후의 "성공학" 자기 계발서 시대의 대한민국의 공식 담론이 좀 솔직 (?)해졌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파 민족주의와 일제 말기 총동원 시대의 '공동체' 논리를 계승한 박정희 국가 '도덕' 교과서들의 "공익/공동체" 이야기는, 파쇼적 냄새도 다분히 났지만, 사실 발전 국가의 현실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허위 의식 유포"에 가까웠던 것이죠. 군부 지배자든 그 밑에서 경제를 장악한 재벌이든, 부동산 투기로 재미나 보고 있었던 중산층이든 1960-80년대 군부 독재 하의 유산 계층들의 행동의 실질적 논리는 "공동체 기여" 이야기하고는 전혀 무관했습니다. 자본주의 초기 축적 시대다운 야수적, 포식자적 타도야말로 훨씬 더 전형적이었죠. 신자유주의 시대의 카네기주의적 자기 계발서들은 이 야수성을 그저 공식화시켰을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공식화시키고 체계화시키고 심리화시킨 것이죠. 자기 계발서의 세계에서는 만인이 만인의 경쟁자이며, 경쟁 구도에서의 최고의 무기는 속생각 은폐와 위선, "관계 관리"와 타자의 도구화이며, 최종의 목표는 바로 "부자 되세요"입니다. 한국 사상사는 고조선 시대의 유교나 민간 도교 유입 이후 약 2100-2200년간의 경력을 지니고 있지만, 사리사욕이 개개인 삶의 유일무의한 목표가 되고 교언영색이 성공을 향한 경쟁에서 당연하고 합법적인 무기가 된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 때 처음 생긴 일입니다. 2천년 넘는 역사에서 최초의 일이죠. 허울 좋고 신빙성도 없는 개발 독재 도덕 교과서의 각종 "공동체" 이야기보다는, 무자비하게 솔직한 (?) 자기 계발서들의 "성동" 담론은 보급 효과가 훨씬 훨씬 좋습니다.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이 되고 나서 22년 밖에 안지났지만, 인제 이 "성공" 이야기는 거의 과거의 삼강오륜과 같은 '통념'의 위치에 선 득한 느낌마저 듭니다. 3년 전의 한 여론조사에서 고교생의 56%가 "10억만 생긴다면 죄짓고 감옥 갈 용의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여론조사의 결과인데, "부자 되세요" 신앙이 불과 20여년 만에 이 정도로 사람들의 생각을 확 바꾼 겁니다. 이 냉소주의의 사막을 빠져나가고 좌파/진보적 입장에서 '공익'의 논리를 다시 재건하자면 정말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간적 타자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 지구 환경 등꺼지도 배려와 동감, 연대의 대상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할 것이고, 과거 '공익' 이데올로기들의 인권 침해적, 권력 남용을 허용했던 요소들도 철저하게 반성,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 길로는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출세 (캐리어)와 소비 욕망을 유일한 가치로 설정한 가치관이 결국 개인과 이미 지구를 거의 망가뜨린 인류 전체를 파멸의 문으로 지금 끌고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인간은 살면서 진화되는지 퇴보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좌우간 계속 "바뀌는" 동물입니다. 그리고 드문 예외들도 있긴 하지만, 보통 인새의 코스동안 한 인간의 정치적 의견의 변화는 "급진"에서 "온건" 내지 그 이상의 "보수"쪽으로 이루어집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죠. 존재가 의식을 결정짓는다고는 하잖아요? 먹여살려야 할 '가솔'도 변제해야 할 모기지론도 없고, 동시에 직장에서 나오는 연봉도 직장에서 보내주는 해외 출장도 없는 '학생' 시절의 사고와, 이 모든 존재의 조건들이 다 붙게 돼 있는 '생활인'의 사고는 어찌 같겠어요? '학생'이라면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을 억제하는 현실적 조건들이 그리 많지 않은 동시에는 혈기왕성한 도덕적 최대주의 같은 게 강합니다. "동심이 천심"이라는 말이 진리라면 아마도 그런 차원에서는 진리겠죠? 반대로 성인, 생활인, 직장인은....이미 너무나 많은 타협을 한 인간인지라 '도덕'이 머리 속에서 절로 상대화되는데다가 대개는 인생에 피로와 환멸부터 많이 느끼곤 하죠. 급진주의자로 계속 살아가기엔 좋은 조건은 절대 아니죠. 실은 남을 평하기 전에 저 자신부터 점차 바뀌어 나가는 것을 실감합니다. 아니, 정견은 그대로죠. 저는 지금도 진보 (좌파) 정치가 한국 사회의 끔찍한 불평등 해소애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는 생각합니다. 당 (노동당) 소속도 여전하죠. 단,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에서 별나별 꼴을 다 본 뒤로는, 우파 자유주의 정권에 대해서는 "좀 더 편다하"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합니다. 옛날부터 이게 차악이랄까, 그런 생각을 해온 부분은 있지만, 요즘 같으면 이 생각이 다소 강화된 것을 스스로 느낍니다. 제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이겠지만, 김용희 노동자와 같은 재벌들의 노동탄압 피해자 분들의 입장이 매우 다를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기는 하죠. 우파 자유주의자들은 저 같은 글쟁이들에게는 나쁘게 하지는 않고 때로는 잘해줄 수도 있지만, 재벌 폭력의 피해자들에겐 제대로 도움을 줄 리가 없으니까요. 그런 '괴리'를 느끼지만, 그래도 "2017년 이전보다 편하다"는 체감 같은 건 어쩔 수 없는데, 이것도 보수화의 일종인가, 스스로에게 묻기도 하죠. 그리고 "생활적 보수화"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2004년만 해도, 저를 특강차 초청해 "비즈니스 클래스" 표를 제안한 국내의 한 학술 기관에 저는 정정당당하게 (?) "저의 계급적 적들과는 같이 앉을 수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해 일반석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한 번 특강 갔을 때에 "비즈니스 클레스" 제안을 인제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요통이 생겨서, 누워서 갈 수 있는 게 제 병황 차원에서 큰 혜택이라고 스스로에게 합리화했지만....뭐, "사모펀드"와 급 (?)이 좀 달라도 저부터 조국 장관에게 돌을 던지기가 힘들 것입니다. 좌우간 인간 자체가 좀 그럴 수 있고 저도 그러니까 남을 도덕 심판할 일이 없다고는, 분명히 단서를 달고자 합니다. 남을 심판하기도 그렇고 이게 꼭 "한국적"이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습니다. 2011년에 노르웨이까지 가세해서 서방 국가들이 리비아를 폭격해 정권 전복, 그리고 사실상의 통일 국가의 멸망을 가져다주었는데, 노르웨이에서 이 제국주의 침략을 주도한 것은 옌스 스톨텐베르그 전 총리 (현 나토 사무총장)입니다. 노동당이죠. 바로 그 옌스씨와 함께 한 때에 월남전 반대 데모를 하면서 미국 대사관에 돌을 같이 던졌던 사람을,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기에, "그 때"의 젊은 좌파인 옌스 스톨텐베르그와 오늘날 리비아 침략의 주도자인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이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죠. 그러니 과거의 "맑스ㅡ레닌주의 혁명가"가 인제 와서 "폭력 집회 암단"이라고 노동자들에게 이야기해도 저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이게 "한국 특유"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살다 보니 도처에서 볼 수 있는 꼴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게 된 거죠. 그래도 저는 저 자신과 한국에 계시는 동료 학자들에게는 한 번 진지하게 묻고 싶긴 합니다. 아무리 보편적 현상이라 해도, 그래도 한국 정계나 학계에는 왜 전향자들이 이렇게도 수두룩하죠? 그 숫자도 많을 뿐만 아니라, 그 형태도 거의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극단적이기도 합니다. 경성제대의 맑스주의 지하 셔클 활동했다가 일제말기에 침략전쟁의 나팔수가 된 유진오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예컨대 한 때에 평양으로 밀항했을 정도로 철저한 "반미, 반일, 반제" 혁명가이었던 분은, 지금 일본 정부와 재벌의 돈을 받는 "연구 기관"에서 반북, 반중을 위주로 하는 "한일 연대"를 주장하시는 경우 같은 거죠. 아니면, 카프 연구 등으로 "명문대" 교수가 된 뒤에 국문학계에서 "전체주의적" 좌파 등에 대한 마녀사냥과 비슷한 운동을 벌여온 또 한 명의 "거물" 연구자의 경우는 어떤가요?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을 주도했던 "맑스주의 경제학자"는 인제 "위안부"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을 비하하느라 바쁘고...정계는 더 가관입니다. 몇년 전에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암살을 진지하게 (!) 제안한 하태경씨는, 본래 NL계 학생 활동 출신은 아닌가요? 신지호 이외에는 뉴라이트계 정객들은 거의 다 그런 배경의 소유자들입니다. 그러니 "맑스-레닌주의 혁명가" 출신이 "폭력 집회 엄단"을 거론해도 별로 위화감이랄까 이질감이랄까,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주류 정계란 이런 곳이래니까요. 각종 전향자들의 집합체죠. 저는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합니다. 하나는, 한국 사회의 "학력에 기반한 계급성"의 무게 같은 거죠. 명문대 총학생회 회장이 아무리 말끝마다 "민중"을 언급해도, 한국적 상황에서는 그와 그 '민중' 사이에서는 천양지차 같은 게 있습니다. 노동자 활동가는 가압류 등으로 얼마 되지도 않은 가진 것들을 다 잃고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수 있지만..."명문대" 학벌이 있는 "운동가"는 언제든지 그 학력을 바탕으로 삼고 그 경력을 팔아 "출세"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명문대" 학벌의 소유자는 관념적으로 "친민중적"일 수는 있지만, "민중"과 그들 사이에는 늘 넘을 수 없는 "신분 차이"라는 게 있는 거죠. 그들도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를 일종의 "선민"으로 인식을 해서 때가 되면 정해진 출세의 가도를 그냥 밟습니다. 그들이 처음이 아니었잖아요? 한 때 <독립신문>을 상해에서 편찬했다가 결국 "황민화"의 이념가가 된 이광수 같은 현대 한국 문학의 "아버지"와 같은 대선배들도 그들에게 하나의 롤모델이 될 수 있겠죠? 그리고 또 하나는, 대안적 인생 궤도의 태부족 같은 겁니다. 1980년대에 지하에서 <자본론>을 일어로 읽어 맑스주의자가 된 사람이 지금까지도 그 신념을 그대로 견지한다고 칩시다. 그가 일찌감치 운좋게 "교수"가 됐다 해도, 맑시스트인 이상 학계에서는 게토에 갇힌 극소수자일 것입니다. 맑시스트들이 꽤나 많은 영국이나 캐나다 학계와는 아주 다르죠. 정계는 더하면 더하죠. 정의당, 노동당에 들어가 풍찬노숙해야 하고, 그 무슨 "벼슬"할 생각을 그냥 버려야 하고 평상 박한 활동비로 살아야 하고....사민당들이 힘을 꽤나 쓰는 유럽과는 완전 다르죠. "명문대" 학벌 소유자에겐 솔직히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이 가시밭길 걷기가 쉽겠어요? 하여간, 아쉬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전향'은 한국 근현대사의 하나의 주요 코드입니다. 그만큼 끝까지 전향하지 않고 지금도 "계급"과 같은 화두를 놓지지 않는 사람들이 존경스럽기만 하죠. 그들이 비록 소수라 해도, 그런 소수가 있기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요즘 "조국 사태"는, 후보자의 딸에게 입시 부정이 있었느냐 내지 "능력"대로 '명문대' 갔나냐 라는 지점 위주로 흘러가는 듯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아주 근본적으로 따져 보면 '계급 재생산'이라는 차원에서는 '부정'의 문제는 다소 2차적입니다. 굳이 '부정'이 없어도, 사회가 인정하는 '능력'대로 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계급/계층의 출신은 그 부모의 광의의 계급적 위치를 충분히, 얼마든지 세습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와 같은 계급의 재생산은, 아무리 천부적으로 '재능'이 있어도 그 사회화 과정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구조적으로 키우지 못한 흙수저 출신에게는 신분상승의 길을 차단시킵니다. 이미 성장이 끝난 시점이고 체제가 완숙 단계에 들어간 것인데, 중상층과 상류층이 대체로 재생산되고 세습되는 상황에서는 "개천"에서 어디로도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는 당연 없지요. 그러니 이미 인권침해적인 "신상털이", 일종의 "몰이"로 전락된 이 "사태"를 넘어서, "능력"이라는 범주를 한 번 비판적으로 성찰해보도록 하지요.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 내지 신분세습에 제일 필요한 능력은? 한국에서는 아마도 '영어'겠지만 보편적으로 말하자면 대체로는 일차적으로 독서력, 문자 이해력 같은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계급사회가 존재한지 약 5천년이 지났는데, 바로 계급사화와 함께 태어난 것은 슈메르의 설형문자, 애급의 상형문자, 그리고 약간 나중에 상나라의 갑골문자죠. 계급사화와 함께 태어나고 계급질서의 유지와 재상산 도구 역할을 그때부터 해온 것이죠...좌우간, 예컨대 제게 "읽기" 능력이 없었다면 제가 연구자가 되어서 노르웨이까지 왔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활자중독에 가까운 "읽기"에 대한 집착은 과연 저의 천부적 재능인가요? 전혀요. 부모와 조부모, 그리고 거의 모든 일가 친척들은 (비록 조부모는 노동자 출신이라 해도 현직은) 지식분자인지라 어릴때부터 책에 둘러쌓여 책들과 친하게 지내는 걸 당연시해온 겁니다. 아무런 천부적 재능은 없어도, 이런 분위기에서는 독서력을 안/못키우면 이상한 것이죠. 만의 하나에 공장 노동자의 자녀로 태어났다면? 쏘련의 공립 도서관 제도는 아주 좋았으니까 이런 경우에도 어쩌면 독서인으로 자랐을 수도 있었겠지만 좌우간 확률은 훨씬 더 낮았을 것입니다. 독서력 다음으로 중요한 능력은? 맞습니다. 논리정연하게, 두서있게, 난삽한 고등 어휘를 써가면서 말을 할 줄 아는 것입니다. 말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아이는, 그 어떤 면접시험에서도 다 유리하겠지요. 그리고 모어로 "표리부동"이니 "소탐대실"이니 식자들이 쓰는 표현들을 어릴 때부터 잘 익힌 아이라면, 커서 영어의 고등어휘 습득도 훨씬 쉽게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별명은 "교수"이었습니다. 전문대 교원인 제 어머니가 늘 써온 강의투의 언어를, 제가 어릴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배껴서 그대로 습득한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다음 그 무슨 면접 통과도 식은 죽 먹기죠. 저도 특목고 (세계문학)에 다녔는데, 그 입학 과정에서 '부정'을 쓸 입장에도 서 있지 않았지만, 쓸 필요도 없었습니다. 특목고의 면접관은, 제가 쓰는 강의투의 언어를 듣기만 하면 광의의 동료/동류의 자녀라는 제 정체를 바로 알아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만약에 공장 노동자의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과연 이런 언어를 어린 시절부터 익혔을까요? 그러니 '능력'이라는 게 넓은 의미에서 '세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 어떤 문화자본의 근저에는 독서력과 고등어휘, 고등언어 구사 등이 자리잡고 있지만, 대한민국에서의 "제1위 문화자본"의 종류는 물론 '영어'입니다. 구쏘련도 사실, 개혁, 개방으로 향하고 있었을 때에는 영어는 각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지식분자의 외국어는 불, 독어이었지만요. 무엇이든 "회화"로 통하는 요즘과 좀 다른 문화고 다른 시대인지라 저는 영어를 디켄스나 골즈워디, 그램 그린 등의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배웠습니다. 그런데...이건 저로서 아주 쉬웠는데, 그 이유 역시 "집"에 있었습니다. 집에는 디켄스나 골즈워디의 러역 전집들이 다 소장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영어 익히기 위해서 나중에 원본으로 읽어야 할 책들의 역본들을, 제가 그냥 어린 시절에, 편하게 소파에 누워서 다 볼 수 있었던 것이죠. 노동자 출신이지만 결국 하급 간부가 된 외조부는 영국 고전 문학의 광팬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공장 노동자의 집에서 태어났다면? 아무리 평등 지향적 쏘련이라 해도 희귀본인 골즈워디의 전집을 소장하는 노동자들의 집은...좀 드물었습니다. 그러니 이 점에서도 "능력"은 바로...맞습니다. "세습"의 다른 표현입니다. 저는 "사다리"를 밟고 있었을 때에는 그다지 '부정'을 한 건 없었을 것입니다. 착해서가 아닙니다. 하급 지식분자/간부 가정인지라 뭐 '부정'까지 할 입장이 되지 않았지요. 고급 당 간부이었다면 달랐겠지만요. 그런데 아무리 "능력"으로 특목고나 레닌그라드국립대의 동양학부, 그라음에 모스크바국립대 대학원으로 갔다 해도, 이 '능력'이란 광의의 문화자본의 '세습'에 불과하다는 점을 저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조국 사태" 논의가 굉장히 빗나가고 있다는 것을 계속 느끼는 겁니다. 우리가 진정 논의해야 할 것은 후보자 본인도 아닌 그 가족들의 그 무슨 표창장 따위는 아닙니다.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강남에서 책이 많고 유식한 말을 쓰는 집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 교수 아빠와 함께 외국 돌아다니면서 영어를 배울 가회가 없었던 아이에게는 그 천부적 재능대로 어떻게 해서 공정한 신분상승, 사회 진출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냐 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문화적 자본을 세습할 수 없는 다수를 위한 역차별 정책 같은 것을 우리가 지금 논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표창장 이야기로 도배되는 언론에서는 이 핵심적 부분은 전혀 보이지 않죠. 저는 그래서 억울한 마음에서, '부정' 문제와 무관하게 "능력"이라는 것 자체도 결과 신화에 불과하다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제 인생을 사례로 들어 여기에 써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