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를 아들 집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5층 사는 데레사가 이런 말을 했다.
"언니, 추석 때 쓸쓸하데요. 나는 아무 것도 안해먹었는데, 글쎄 아랫집에서 지지고 볶는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 거예요."
데레사는 운신이 힘든 구십 넘은 치매 노모와 함께 살고 있다. 결혼도 않고 홀어머니 모시며 평생을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퇴직했기에
그녀는 부엌일에 매우 서툴다. 그러고보니 추석이라고 법썩 떨 일도 없고 딱히 그 음식들이 그리웠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요즘은 돈만 주면 추석 음식쯤은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는 시대 아닌가.
그녀는 5급 공무원을 지냈으니 돈 같은 것쯤은 걱정하지 않고 살아도 된다.
그녀가 쓸쓸했던 건 명절이 주는 외로움 같은 거였을 것이다.
그녀는 부모님이 이북에서 내려왔기에 친척이 거의 없고, 부친이 일찍 타계하는 바람에 형제도 없는데다가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남편과 자식도 없다.
나는 몸이 피곤했지만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뭔가 뒤져서 데레사에게 줄 전을 부치고 싶었다.
계란이 있고, 당근과 반토막 남은 호박과 몇 달 전에 샀던 배추 속 고갱이가 조금 시들은 채 야채박스에 잠자고 있었다.
아참, 그리고 고구마도 한 봉지 보였다.
나는 베란다에 나가 화분에 심어져 있는 부추를 한 줌 베었다. 그 옆 화분에 절로 자란 들깨 이파리도 몇 잎 땄다.
이쯤 되면 부추 깻잎 부침개와 호박전과 고구마 전과 배추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고기는 없었지만 데레사는 본디 야채를 좋아했으니 이만만 해도 괜찮을 듯 싶었다.
나는 부랴부랴 재료들을 다듬기 시작했다.
내 입에 넣자고 했다면 결코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았을 거다.
만든 것이 큰 접시로 그득했다.
부지런히 손을 놀려 그녀가 아침을 먹는 시간(8시 30분경 먹는다)에 전화를 걸었다.
몇 가지 전을 부쳤다면서 5층으로 내려가겠다고 하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기뻐하였다.
선물을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기쁘다는 말도 있지만 그 날 내 마음이 그러했다.
주고 싶은 마음에 몸이 고된지도 몰랐다.
치매 노모의 얼굴에 웃음이 환하게 피어나 내 마음이 더욱 뿌듯했다.
젊은 시절엔 봉사 생활을 제법 하였기에 늙어서도 이런 생활이 이어지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
삶을 누군가와 나누는 의미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손녀에 묶여 내 개인 생활을 마음껏 지속할 수가 없다.
큰 봉사만이 봉사는 아닐 것이다. 생활 속에서 틈틈이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봉사가 아니겠는가.
이제 내 몸도 힘들어져 힘을 쓰는 봉사는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손을 놀려 음식을 만드는 일은 아직은 가능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에 속한다. 멀리 갈 것 없이 가족이 없어 쓸쓸한 데레사에게 이따금 집 반찬이나 즐기게 해줘야겠다.
그들 모녀의 기뻐하는 모습에 나는 어제 또 다시 잡채를 만들어 넉넉히 갖다 주었다.
그 덕에 내 입도 즐거웠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몸도 몸이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또 한 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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