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나는 새들의 엄마였다

tlsdkssk 2016. 1. 19. 09:41

한 때 나는 새들의 엄마였다.

베란다에 새장을 마련해 십자매 일남일녀와 함께 살았다.

새들은 때도 없이 노래하고 나는 그 소리를 듣는 게 행복하였다.

새장의 오물을 치워주고 물을 갈아주고 모이를 챙겨주는 일은 생각보다 귀찮았지만, 나는 늘 싱싱한 야채들을

내 새끼들에게 보급했고, 냉장고에 야채가 없는 날은 화분가의 잡풀을 뜯어 주기도 헀다.

새들은 그것도 즐겨 먹었다. 그 잡풀은 아주 작은 하얀 꽃을 피우기도 했는데 나는 새가 그 꽃을 먹을 때면

새들의 목소리가 더 좋아져 더 예쁜 소릴를 낼 것만 같은 상상에 젖어들곤 했다.

이름모를 야생초가 집요하게 싹을 내어밀 때마다 그걸 뽑을 수 밖에 없어 미안하기도 했지만, 

새 가족을 바라볼 때면 그 야생초가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었다.  나는 야생초에게 말을 걸었다.

"미안하다. 하지만 너 때문에 우리 새가 행복하단다. 너는 죽는 게 아니라 새 소리로 환생하는 거야."

 

새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노래부터 불러대었고, 해가 저물면 서둘러 둥지로 들어갔다.

새들과 함께 하기 시작했던 그 해 봄,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되었을 때,

새들은 더 일찍 둥지로 들어갔다. 작은 둥지 속에서 서로의 머리를 기대고 있다가 포근히 잠들었다.

새집에 비닐을 둘러 준 덕인지 새들은 한 겨울을 베란다에서 무난히 넘겼다.  

며칠 씩 집을 비우다 집에 오면 나는 우선 새장부터 들여다 보았다. 

작은 둥지 속의 작은 새 두마리는 추위에 몸을 서로 의지하며 잠들어 있다가 나의 기척에 잠을 깬 듯 작은 소리를 내었다.

주인의 부재로 난방이 꺼져있던 추운 집에서 나는 집안이 데워질 때까지 새장 앞에 쭈구리고 앉아

그 새들을 바라보았다. 날이 추울 땐 고적감도 더하고 사람의 온기가 그립기도 했다.

"아, 나도 너희 속에 끼고 싶구나."

나는 상상으로 나를 새로 만들어 그 사이를 파고 들어갔다. 세 마리의 새가 그 안에 있다. 그러자 내 몸이 아주 따뜻해왔다.

 

지난 해 여름, 나는 새들이 가여워 어느 날 새들을 새장에서 풀어주었다.

새들은 좋아라 하며 베란다 공간을 날아다녔다.

다시 며칠 집을 비운 뒤였다. 집에 돌아와 보니 새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갈 때 거실 문을 열어놓고 방문도 모두 열어 놓았는데, 그 사이 새들은 살판 난듯이 집안을 온통 제 세상인양 날아다니고 있었다.

다시 새장으로 잡아 넣으려 했지만 녀석들은 어림 없다는 듯 참새처럼 잘 날랐다.

저렇게도 좋아하는 걸! 이참에 쟤들을 완전 해방 시켜주어야겠구나. 한 여름이니 세상엔 먹을 것도 많을 테고...

나는 베란다 바깥 창을 열고 새들이 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숫놈 한마리가 기다렸다는 듯 밖으로 날아갔다.

나는 암놈을 바라보며, 너도 나가라, 네 신랑 따라가라 하며 새를 몰았다.

그런데 새는 밖으로 나가기는 커녕 새장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녀석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하고 그 날 부터 우리 둘만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새는 혼자서도 잘 사는 듯 했다. 저녁이 되어 둥지 안에 들어갈 때면 옆자리가 비어 있어 측은하기도 했지만,

그건 뭐 자기가 선택한 거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찾아와 나는 이중뽁뽁이를 이중으로 둘러주며 새집의 난방 공사를 단단히  해주었다.

이제는 혼자니 난방으로 견뎌야 할 것이다. 새는 변함없이 노래하고 먹이를 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내었다.

겨울이 되자 먹이를 두세배는 더 먹는 것 같았다.

나는 먹이의 질을 높여 새의 건강을 채워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밤중에 집에 돌아와 옷도 벗지 않고 새장 부터 바라보았다.

"안녕, 새야 잘 있었느냐?"

뽁뽁이 틈새를 들추고 새둥지를 관찰했다. 다른 때는 소리와 불빛에 놀라 잠을 깨곤 하였는데 새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픈 건가? 나는 새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베란다 미닫이 문을 조용히 닫았다.

다음 날 아침이다. 으례껏 들려와야 할 맑고 청아하고 귀여운 새의 노래가 들려오지 않았다.

새장을 살피니 새는 이미 죽어 있었다.

새는 왜 죽었을까. 수명이 다한 걸까?(고작 2년 여 밖에 안됐는데?) 

어디 병이 난 건가?(밥을 그렇게나 잘 먹었는데?)

추위 때문인가?(작년엔 더 한 추위도 견뎌냈는데?) 

작년 추위를 견뎌낸 걸 생각하면 아직은 온난한 겨울였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외로움 때문인지 모른다. 혼자 노래하는 고독함, 혼자 둥지에 들어가야 하는 쓸쓸함...

새는 더 이상 살기가 싫어진 것이리라.

 

새의 노래가 사라지자 내 마음의 쓸쓸함도 늘어만 갔다.

새를 다시 사들일 것인가를 두고 잠깐 고민하다가 장욱진의 새 그림을 거실 장에 세워 놓았다.

그 액자 앞에 초록빛 목각 새도 갖다 놓았다. 

다시금 새 두마리가 채워졌으나 그 새들은 노래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중창은 지금껏 들려올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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