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혜숙아, 눈 온다!

tlsdkssk 2016. 1. 16. 20:49

오늘 눈발이 산발적으로 흩날렸다.

친정에 갔다가 집으로 가는 길, 전철 안에서 정우씨의 전화를 받았다.

"웬일이세요?" 했더니,

"눈이 오길래, 혜숙아, 눈 온다, 라고 전화하려 했더니 전화가 꺼져 있대요.혜숙씨, 아니 아가씨(그가 농담조로 곧잘 하는 말), 이런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거, 좋은 거 아냐?"한다.

나는 그만 까르르 웃으며, 그 전화 받았으면 재미있었을 거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어서 왜 자기 박물관에 놀러오지 않느냐며 지청구를 늘어놓는다.

지난 번 통화 때에 1월 안에 남미에 가기로 돼 있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노라 했더니 마누라가 반대해서 못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내 누가 반대한다고 못 갈 사람이냐며 자기역성을 든다. 조만간 나가겠다고 한다.

2월 중에 한번 시간을 내보겠노라 하자, 그는

"혜숙 씨, 사는 게 뭐 이래? 지랄같네요. 드럽게 외롭고 ..."한다.

한껏 외로웠던 모양이다.

그는 본래 남편 친구였지만 전부터 사귀어 온 내 친구 같기도 하다.

언젠가는 그는 내게 전화하여, 돈좀 벌었다는 친구들이 자기를 초대하여 가봤더니,

모두들 비아그라나 쳐 먹고 여자들 만나 추접한 짓들을 하고 있다며 혀를 끌끌찼다.

다시는 그 넘들하고 어울리지 않겠단다.

그 넘(?)들 중엔 내가 알만한 사람도 있었는데 그런다고  삶이 뭐가 달라질까.

그런 일시적 쾌락이 무슨 구원을 줄 수 있을까. 쾌락도 일상이 되면 머잖아 권태감이 느껴질 테고

진정한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 뒤에 찾아오는 것은 더한 공허와 자괴감, 씁쓸함이 아닐까 싶었다. 외로우면 외로운대로 허무하면 허무한대로 어느만큼은 삶의 민낯을 정시해야지

삶의 본질이란 어떤 가식이나 일시적 도피로 해결되는 게 아닐 것이다. 민낯이 구차스럽고 초라하다 하여

거기에 화장을 덧칠하고 성형 수술을 되풀이하다 보면 마침내는 괴물이 넘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정우 씨는 때로 거칠고 엉뚱한 언행을 보이는 것과 달리 순수한 이면도 지니며 살고 있는 사람이다.

"정우 씨, 지금 여기가 전철 이예요." 하자, 그는 놀러오면 맛있는 것 사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가족과 사업, 그 모든 걸 충족하게 지니고도 그 또한 삶의 외로움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외로움에 지친 그에게 그게 본질이니 외면말라며 오늘 내가 쓴 글이나 한 대목 들려주고 싶었다.

나의 외로움은 안녕하시다, 란 제목의 수필 결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산다는 건 외로움이 늘어간다는 것, 아니 깊어진다는 것.

세월 갈수록 이들은 묵은 각질처럼 켜를 쌓아가고

언젠가 나는 마른 각질을 긁어대며,

그 편린들을 비듬처럼 날리며 사위어갈 것이다.

외면하려들지 말자. 그게 본질이다.

오라, 외로움! 나는 차라리 더 깊은 그의 심장부를 향해 들어가겠다.

그 모든 걸 품고 응축해 푸르디 푸른 크리스탈 탑 하나 단단히 쌓아보련다.

그러니 나의 외로움은 안녕하시다.

아직은, 아직은 안녕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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