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커피 이야기

tlsdkssk 2015. 2. 22. 12:03

작년 이맘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사순절을 맞으며 주님께 두 가지 약속을 했다.

하나는 눈을 뜨자마자 엉터리 기도하고 컴퓨터부터 찾는 것을 지양하겠다고.

또 한가지는 희생과 극기의 의미로 커피를 끊겠다고.

부활절을 맞을 때까지 좋아하는 커피를 끊는 것으로 나 자신의 절제심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커피를 아낀 돈을 불우 이웃에게 보내는 데 보태기로 한 것이다.

열흘쯤 지났을 때였다. 하루하루  시름시름 기운이 빠지더니 나는 무슨 중병의 전조증상처럼 

비틀거리며 점차 바람빠진 풍선 꼴이 되고 말았다. 덩달아 기분도 울적해지며 삶의 의욕도 땅밑으로 꺼져들어 갔다.

늙느라고 그런 걸까 하며 고개를 갸웃 해보다가 근래 뭔가 음식을 잘못 먹어 그런가 싶어 먹은 음식을 찬찬히 체크해보았다.

아무리 짚어봐도 특별히 잘 못 먹은 것 같은 음식은 없는 것 같았다. 굳이 걸리는 게 있다면 늘 마시던 커피를 끊었다는 점 밖에는.

그렇다면 그게 혹시 커피 결핍 때문? 매우 타당성 있다 싶어 즉시 따끈한 한잔의 커피를 마셔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사그라들었던 기운이 불쑥 치솟는 것이었다.

나는 주님께 드렸던 내 약속을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다시 2015년 사순절을 맞는다.

물론 나는 커피를 끊겠다는 약속 같은 건 하지 않았다. 한데 일전에 J 때문에  속을 끓인 일이 있은 뒤로 위염 증세가 느껴져 

부득이 커피를절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닷새가량 커피를 마시지 않은 것 같다.

요 며칠 몸이 그렇게 힘이 들 수가 없었다.

이틀간을 침대에 누워 쉬어보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늘 아침 문득 작년 이맘때의 기억이 떠올라 머그 가득 뜨거운 커피를 담아 마셔보았다.

아, 이 신비한 힘을 뭐라 형언해야 한단 말인가.

성당에 가려고 집을 나서자 돌연 등산이라도 하고싶어지는 거였다.

마침 봄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지 않은가.

이 비를 맞으며 산길을 돌다 오면 몸이 날아갈 듯 회복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오후엔 아들네로 가야하기에 치솟는 기운을 눌러두었다.

커피의 위력을 새삼 깨닫는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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