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라던 동요에 의하면 오늘이 바로 까치 설날이다.
까치 설날은 인간에겐 설 준비로 바쁜 날이다.
남자들은 가족 데리고 귀향하는 문제로 그렇고, 여자들은 설 음식 장만으로 그렇다.
한데 나는 홀로 한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 자유로운 인간은 솔로들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의 대다수는 이런 명절 때 외로움을 느낀다지만 나는 외로움마저도 괜찮다.
제사는 미사로 지내니 굳이 번잡하게 음식 장만 할 필요가 없고, 오고갈 친척 없고(친정엄니에게만 다녀오면 됨), 남편은 하늘나라로 이민 떠난지 몇년 됐고, 아들 가족과는 어제까지 5박5일을 했으니 피차 얼굴을 볼만큼 봤다.
오늘 저녁까지는 홀로 지낼 것이다.
기름진 음식쯤은 없어도 상관 없다.
내 집엔 김치쪼가리마저도 떨어져 나는 남은 김치국물로 김치를 대신하고 있지만 지지고 볶는 일보다야 한결 낫다.
아침에 찬 없는 끼니를 떼우고 있노라니 문득 상도동 시절이 떠올랐다.
그 때 나는 마당 너른 친구 H의 친정 집을 싼 전세로 살면서 뜰에 화초와 채소를 가꾸며 마음껏 행복했었다.
친구는 싼 전세로 사는 대신 자기 친정에 가정부로 있었던 '영천 할머니'를 보살펴 줄 것을 부탁했었다.
착하고 어진 그 할머니는 가족이 없어 마땅히 오갈 데가 없는 분이었는데 친구네 부모들이 세상을 다 떠나시고 나니,
친구의 친정 집에서 오랫동안 가정부를 지냈던 그 분을 마땅히 모실 데가 없었다. 할머니는 고향에 친척이 있어 언젠가는 영천으로 갈 예정이라고만 했다. 그게 언제가 될찌는 모르지만 그 때까지만 함께 지내달라는 거였다.
나는 선뜻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 분은 어질어 보였으며 세 끼 밥만 같이 먹으면 될 뿐 그 이상의 의무는 없으니
거리낄 게 없었다. 한데 함께 지내고 보니 할머니의 존재가 여간 훈훈하고 존경스러운게 아니었다.
작은 호의에도 그 분은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표했으며, 음식이나 잔반을 함부로 버리는 일이 없었다.
가령 된장 찌게가 아주 조금 남아 내가 버리려 하면,
"선생님,(그 때 나는 친구의 신경정신과 병원에서 환자들 재활치료 프로그램을 맡고 있어 그렇게 불리웠다) 그냥 놔두이소.
내가 먹을 거라예" 하고는 다음 식사 때 그 국물을 호박잎 쌈에 넣어 쌈장 대신으로 잡수시는 거였다.
물론 김치나 깍뚜기 국물도 버리지 않았다.
그 할머니는 습관처럼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하신지..."라는 말씀을 달고 살았지만, 예수장이들이 타성적으로 읊어대는 할렐루야나 아멘 을 들을 때
내가 번번이 느끼던 거부감은 전혀 없었다. 왜냐면 그분은 진실로 겸손하고 작은 것에도 진정한 감사를 느끼며 마음의 평화를 지닌 분이었기에 그러했다. 또한 자기 신심을 과장되게 내보이거나 하지도 않았다.
지금 내 냉장고 김치통엔 김치국물만 남아 있는데 나도 그 국물을 버리지 않을 생각이다.
김치국물을 버리는 것은 환경을 나쁘게 하는데 일조할 뿐만 아니라 먹어보니 국물로 반찬을 대신하는 것도 꽤 괜찮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할머니는 아직 살아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