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누워서 책 읽기

tlsdkssk 2015. 2. 11. 09:41

겨울을 지내는 동안 내 취미는 누워서 책읽기가 돼버렸다.

작은 싱글 침대에 베개 두개, 그리고 쿠션 두개가 누워서 책읽기에 동원되는 장비(?)들이다.

베개와 쿠션을 역학적으로 잘 배치하여 베고 고이면 누워서 두 팔 쭉 펴고 책 읽는데 큰 불편이 없다는 말씀.

 

오늘 아침엔 평소 읽는 책이 좀 멀리 있기에 일어나기 귀찮아 가장 가까이 있는 책을 잡았더니

몇 년전에 출간된 월간 문학지 <현대문학>이다.

부부가 정신과 의사인 내 친구 부부는 두 사람 다 독서량이 엄청난데,

매달 보는 현대문학지를 한 번 읽고 버리자니 좀 아까운 생각이 든다기에 버릴 때 나한테 버리라 했더니

어느 날인가 몇달치 현대문학을 택배로 보내왔다. 

거기엔 연재물이 적잖이 있어 읽어도 별 의미가 없는 글이 꽤 있기에 평소엔 그런 연재 소설을 그냥 지나치곤 했다.

한데 오늘은 읽지 못한 전편을 무시하고 그냥 당호가 보여주는 부분만 읽어나갔다.

그래도 밑줄 긋기 한 부분이 꽤 되어서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구에서 정밀 시계는 속세의 필요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기도와 노동만으로

이뤄진 수도 생활에 엄격한 규칙성을 강제하려고 수도원에서 만든 것이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해서 소설 속에 인용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행문에도 줄을 북북 긋는 등,

이제껏 내가 모르던 세계를 접하는 즐거움이 솔솔했다.  

또한 작가 최인호 사후에 특집으로 나온 대담 내용 역시 흥미로웠다.

최인호 소설에는 사회의식에 없다,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에 대한 최인호의 응수도 눈 여겨 읽었다.

그 요지는 이러하다.

'작가는 시대의 한 현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현상을 분석하고 현상 뒤에 숨겨져 있는 그 현상의 핵심을 날카롭게 파악하여

그 현상이 왜 그 시대 속에 존재하는가를 문장과 소설가의 혼으로 그려내야 하기에

작가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문제로 '돌아와야한다'

 

이 문제는 수필을 쓰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될 것이며 그간 수필은 타 장르에 비해

현실문제에 등한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나 또한 그 문제를 놓고 생각을 적잖이 해보기도 했지만, 

내 관심은 역시 늘 인간의 문제로 회귀하곤 했었다. 그것은 내게 부족한 사회적 의식이나 연대감의 탓도 있었을 테고,

내 환경적 영향도 작용했을 테지만 그 보다 앞서 내 개인적 성향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세월호 비극 이후 나는 몇 편의 수필에서 그 사건을 다룬 글을 읽어보긴 했지만,

아쉽게도 거기서 특별한 문학적 감동을 받은 기억은 없다.

누군가가 현실참여 수필을 써냈구나 하는 신선감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티비나 신문을 통해 넘치도록 받은 충격과 슬픔과 분노를 십여 장 분량의 수필로 녹여내어

완성도를 높이는 일은  어쩌면 한 편의 시로 토설해내는 것보다 어려울 수 있는 문제라는 점만 새삼

절감했을 뿐.  

 

아무튼 오늘 아침에 누워서 책읽기를 하며 나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도 접해 보고, 채플린의 에피소도도 접해보고

하루키의 기행문을 통해 사막의 은수자들이 먹는 돌덩이처럼 굳은 곰팡이가 핀 빵에 대한 기록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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