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거 생활에서 아랫목이 사라진 게 언제였더라?
그 옛날, 연탄불로 시커멓게 타버린 아랫목은 수평적 난로였다.
때론 몸에 화상을 입기도 했고, 이불이 누렇게 눌어버리기도 했으니까.
겨울에도 나는 난방을 거의 안하거나 아주 약하게 하기에 한파가 몰아친 요즘 우리 집 실내 온도는 16도 정도다.
최소한 20도는 되어야 생활하는데 불편이 없다고 하지만 나이 들어갈수록 더 추위를 타니
그보다 2~3도는 높아야 할 것같다. 아무리 추운 날에도 나는 하루 세 차례 정도 환기를 시키다 보니
때론 집안 온도가 더 내려가기도 한다. 이런 추위에서 화장실이라도 가게 되면 소변이 배출됨과 동시
몸을 한 번 부르르 떨게 된다. 제법 강열한 전율이다. 한데 일상 속에서 이 순간처럼 살아 있음이 온 몸으로 전달돼 오는 적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산다는 것은 마치 숨을 쉬는 것과도 같아서 별 생각없이 그날그날의 동작을 이어가는 것일 뿐이므로 살면서도 그 삶을 저리게 느끼게 되는 순간은 그리 흔치가 않다. 지인들과 즐거운 담소를 나누는 시간은 즐거울 수는 있지만 그게 꼭 삶의 확인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거나 향긋한 차를 마실 때도 삶이 확인되는 순간이긴 하나, 곁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그 느낌은 그리 깊숙히 배어들지 못하고 대화나 웃음에 섞여 분산되기 십상이다. 삶의 확인은 역시 혼자였을 때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법. 배탈이 난다든지 두통이 올 때도 평소에 못느끼던 통증 때문에 살아있음을 역설적으로 확인하기도 하지만,그 때의 확인이란 다만 고통일 뿐이다. 하지만 겨울날 소변 끝에 오는 몸의 진동은 약간의 고통을 수반하면서도 짜릿한 쾌감을 안겨준다. 미처 잠을 덜 깬 상태로 화장실을 찾았다가 몸을 한 번 부르르 떨게 되었을 때의 그 전율이란 가히 감동적이 아닌가. 요즘은 한파가 지속되어 우리 집에 있을 땐 낮에도 이따금 그런 감동의 순간을 만끽하게 된다. 그 느낌은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지극히 독자적인 현상이며 화장실이라는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나기에 감도가 강하다.
소변을 배출 한 뒤 몸의 한기를 느끼며 전기 매트가 깔여 있는 침대 속으로 들어가면 천국이 따로 없을 정도로 언제나 행복해진다.
그 옛날 밖에서 돌아와 꽁꽁 언 몸을 아랫목에 집어 넣고 있을 때의 그 기분과 아주 흡사해지는 것이다. 엣날의 아랫목은 연탄의 달궈진 정도나 불을 다른 목적(밥짓기나 물 데우기 등)으로 사용하기에 미적지근하거나 뜨겁거나 했는데, 전기 매트는 내가 원하는 정도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으니 운치는 없어도 쾌적감은 한 수 위다.
나는 그 따뜻함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창을 닫지 않기도 한다. 그러면 머리는 차갑고 온 몸은 후끈하여 침대 속의 행복이 배가한다. 그 뒤에 이어지는 동작은 침대 주변에 쌓아놓은 책들을 손닿는대로 찾아 아무 페이지나 열고 읽고싶은 만큼만 읽어보는 것. 이럴 때 나는 세상 어느 황실의 생활이 부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