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 어쩐다니?
어제 미사 시간에 줄곤 네 생각을 했지 뭐냐.
지난 일욜 밤, 한 침대에 같이 누워 잠을 청하기 전, 이 할미는 경주 세미나에 다녀오는 길이라 무지 피곤하여 그냥 자려는데,
네가 말했지.
"할머니, 기도."
그래, 맞아. 너와 함께 마침 기도 해야하는 걸 나는 그만 거르려고 했어. 언젠가처럼, "우리 각자 속으로하자."할까 하다가
너와 함께 기도를 올렸지. 하느님께 하루를 감사드리며, 네가 튼튼하고 착하게 자랄 수 있기를, 그리고 네 엄마 아빠가 성당에 다닐 수 있기를 기도하며 마무리로 "아멘" 하려는 순간, 네가 "잠깐!" 하며 큰 소리를 내었어. 그리곤 하는 말이,
"하느님, 친구를 무서워하지 않게 해주세요."
그때 할미는 얼마나 놀랬는지. 그래서 네게 물었지.
"친구가 무서워? 왜?"
"있잖아요, 내가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려고 하면 몇몇 애들이 같은 유치원 나온 애들하고만 놀려고 해요."
"그렇다고 무서울 것 까지야.."
네게 짬짬이 들은 얘기에 의하면 같은 반 아이들 중엔 드센 아이들이 있어 너를 제압하거나 따돌리기도 했던 모양이더구나. 그럴 때 마다 너는 마음의 상처를 받아 그 자리를 피했다고 했지. 그 애들이 무서워서.
너는 집에 맛난 간식이 있으면 친구들 나눠 주고 싶어 학교로 학원으로 가져가곤 했는데, 어떤 친구는 실컨 얻어 먹고도,
"간식 아줌마!"라며 너를 놀렸다고 했지.
그 말에 할미는 넘 화가 나서 네게 물었어.
"뭐야? 간식 아줌마? 못된 것들 같으니, 친구들끼리 그러면 안되지. 그래 넌 뭐라고 했어?"
"그냥 가만 있었어."
"이런 순댕이를 봤나. 왜 가만 있어, 그대로 되돌려주지."
"할머니, 어떻게?"
"담에 또 그러면, 가만 있지 말고 "왜 그래 아줌마? 내가 아줌마면 너도 아줌마지?"해주렴."
"난 그런 말 못해. 그 애가 무섭거든."
그 어미에 그 딸이라더니, 그 애 엄마는 주산 교실이 있는 마을 도서관(겸 휴계실)에서 언제나 떠드는 여자란다.
테이블에 먹을 것 잔뜩 쌓아 놓고 도서관이 제 집 안방이라도 되는 듯 몇몇 여편네들이랑 떠드는 걸 할미는 여러 번 봤지.
할머니는 책을 읽다가 방해가 되어 그 싸가지들에게 한마디 해줄까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하도 몰상식한 여편네들이라 그냥 지나치곤 했단다. 혹시라도 자기 딸래미에게 네 이야기를 떠들어 또 너를 성가시게 할까봐였지.
12월 생이라 남보다 여린 건가? 엘리야, 너는 할미에겐 들고양이처럼 대들면서 왜 애들 앞에선 쪽도 못쓰는 거야?
달리기도 네가 젤 잘하는데 애들은 또 그것가지고도 놀린다지? 너는 그때마다 상처를 받고말이다.
너는 아파트 단지에서 네 학부형들이 오면,
"할머니, 인사해. **엄마랑 xx 엄마가 오고 있잖아."하며 할머니가 그네들을 못알아볼까봐(실은 내가 모르긴 하지)먼저 할머니를 준비시키더라.
그들이 할미에게 인사를 해 올때 할미가 그냥 웃음으로 답레하면 너는 꼭 한마디 잔소릴 늘어놓곤 했지.
"할머니는 왜 인사를 안 해?"
"인사를 안 하긴? 할머니는 웃음으로 인사했는 걸."
"그렇게 하지말고 똑 같이 '안녕하세요?" 하란 말야."
이런 예민하긴.
언젠가 네가 수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어.
너는 놀이터에서 그네좀 타게 해달라고 했는데, 놀이터 그네에는 중학생 언니들이 그네를 다 차지하고 물러설 줄을 몰랐지.
그 때 할미가 네게 말했어.
"아무래도 안되겠다. 할머니가 저 언니들에게 잠깐만 양보해달라고 부탁해볼게."
그랬더니, 너는 내 옷자락을 붙잡고 이러더구나.
"그러지마, 할머니. 언니가 화내면 어떡 해."
할미는 네 손을 놓고 언니에게 다다가 웃으면서 말했어.
"언니야, 동생에게 잠깐 그네좀 양보해주면 안될까?"
그러자 언니는 웃으면서 그네에서 내려왔어. 덕분에 너는 그네를 타고 갈 수가 있었고 말이다.
집으로 가면서 할미가 네가 말했지.
"봐라, 그 언니가 화 내든?"
"아니."
"근데 넌 왜 그런 말 못하게 할머니 잡은 거야? 그 놀이터는 너희 같은 어린이들을 위한 장소야. 그러니 네가 우선이고.
하지만 언니들이 먼저 타고 있었고, 오래 타고 있는 것 같으니,그럴 땐 네가 예쁜 말로 언니에게 부탁을 하면 되는 거야. 알았어?"
엘리야, 앞으로 할미가 할 일이 많을 것 같구나.
집에선 호랑이인 네가 집 밖에선 다람쥐만도 못한 것 같으니 너를 훈련시키려면 이 할미가 어떻게 너를 도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