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철학하는 시간의 단상

tlsdkssk 2014. 7. 11. 08:09

수상록의 저자 몽테뉴는 고독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가 말한 고독의 정의는 '육체와 정신의 평정을 방해하는 정렬에서 도피하여

자기 기질에 가장 걸맞는 길을 선택하는 하는 것'이라 고 한다.

결국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에게 돌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는 말이다. 

고독과 외로움은 구별되어져야 하는 개념이다.

한데도 사람들은 흔히 이 두가지를 혼용하거나 그릇되이 이해를 하고 있다.

까뮈는 '모름지기 인간은 자신이 말하는 것들 보다도 침묵하는 것들로 인해 한결 더 인간다워 지는 법'이라고 했다.

이 침묵을 위해서도 인간은 고독을 배워야 하리라.

동양과 서양이 여기에서는 대칭을 이루지 않고 합일을 하는 것 같다.

주의할 것은 고독에만 몰입하면 자칫 지나치게 되는 함정을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이른바 커뮤니케이션의 결여. 커뮤니케이션의 결핍에선 온전한 자기 자신을 찾을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어제 읽은 김병규의 수필<고독이라는 것>은 참으로 울림 있는 작품이었다.

그에 의하면, 혼자 있다던가 모두 함께 있다던가 하는 것만으로 고민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모자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되며 자기에게 돌아가면서 다른 사람과 연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나는 고독을 즐기는 나머지 다른 이나 다른 사회와의 연대에는 비교적 게으르게 살아왔다.

아니 엄밀히 나는 게으른 편은 아니었다.

과거에 나는 재소자들을 위한 봉사를 했고, 정신질환자를 위한 일에도 7년 여 전념한 적이 있고, 

성당 봉사 활동에도 열성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의 외연을 확대하여 그것이 계속적인 힘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일엔 게을렀다.

그 보다는 혼자 하는 일이 내게 훨씬 큰 기쁨을 주었던 것이다. 

자기를 알기위해서는  남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남을 알기 위해 서는 커뮤니케이션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너의 이웃을 알라, 로 고쳐말해도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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