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유년의 끝

tlsdkssk 2014. 5. 17. 18:52

 

                                  유년의 끝/ 민 혜

 

 

내 유년기란 노래와 함께 열렸다. 언제 적부터 그 노래들이 내 입에 붙어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노래들을 시도 때도 없이 달고 살았다. 가사를 끝까지 모르는 게 태반이어서 노래는 제 멋대로 경계를 넘고 이리저리 날았다.

 

양양 양갈보를 바라볼 때에 /썩어빠진 얼굴에다 분을 바르고/ 할로 할로 쫓아다니며/하루에 십만원씩 번대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눈보오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목을 놓아…/잘 있거라 나는 간다/이별의 마아알도 없이…

 

지금 생각해보니 작자 미상의 속된 노래로부터 전우가며 당시의 유행가요까지 망라하여 흥얼거린 것 같다. 시대의 언어에는 시대상이 담겨 있듯, 그 시대의 노래엔 6.25 전쟁을 치른 후의 그 시대상이 담겨 있었다. 내가 살던 충무로 거리, 우리 집 근처엔 레코드 가게가 있어 거리엔 숱한 노래들이 넘실거렸다. 이따금 우리 집을 다녀가는 익제 아저씨란 분은 나를 불러 ‘미깡’을 손에 쥐어주곤 또 다른 노래를 가르쳐주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여준다면(지금 생각하니 어법에도 맞지 않는다만 그때는 그렇게 불렀다)/ 구찌베니(루즈) 하나만 사다주세요/ 구찌베니 형편없다, 고추장이나 발러라, 싫어싫어 나는 싫어 남부끄러워

 

동네 조무래기들은 화장 짙은 양공주들이 지나갈 적 마다 ‘양양양갈보를 바라볼 때에 썩어빠진…하며 악을 써댔지만 나는 정작 그녀들 앞에선 아무 소리도 내지르지 못했다. 소리는 커녕, 박수근의 그림처럼 무채색인 동네의 엄마들과 달리 눈두덩이가 퍼렇고 입술이 새빨간 그녀들이 신기해보이고 때론 인형처럼 예쁘게도 보이는 것이어서 관음하듯 그녀들을 훔쳐보았다. 동네엔 두어 살 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친구들이 얼마든지 있어 하루 진종일 밖에서 돌아도 심심할 새가 없었다. 장난감? 그런 건 있지도 않았지만 필요하지도 않았다. 장난감이 없으니 아이들은 장난의 도구들을 스스로 창조하였다. 나는 흙을 개어 부침개를 만들랴, 벽돌 빻아 고춧가루 만들고 풀 뜯어 김치 담그랴 살림하는 재미에 밥 먹으라 불러대는 엄마의 소리쯤은 들려오지도 않았다. 보다 못한 엄마가 빗자루를 들고 나와 내 음식들을 가차 없이 쓸어버릴 때쯤이야 소꿉놀이는 허무하게 끝장났다.

두어 집 건너에 있던 인숙이네는 메리아스 공장을 하고 있어 동네에선 부유층에 속했고, 인숙이네 창고엔 메리아스 천 조각들이 몇 가마씩 쌓여있었다. 우린 거기를 뒤집어 쓸 만한 천을 찾아내 인형을 만들고 굵은 국수 가닥같이 기다란 천 조각을 머리에 얹어 공주 놀음을 하곤 하였다. 알록달록한 천조가리들을 머리 가득 얹은 여자애들은 코를 훌쩍거리면서도 모두들 공주가 되어 희희낙락 몰려 다녔다.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저녁 시간에 나는 이따금 베개를 업고 나와 동네 골목을 배회하며 아빠를 기다리는 애 엄마 노릇을 즐겨하고 다녔다. 그 때 자초한 슬픔은 왜 그리 나를 끌어당겼는지 나는 한없는 비극의 주인공을 자처하고 있었다. 동네의 주택들은 거의가 2층 적산가옥이어서 우리는 이집 저집 옮겨 다니며 어른들의 눈이 보이지 않는 이층 다다미방에서 놀았다. 머리 큰 사내애들은 자칭 아빠가 되어 내 또래 여자애들의 가랑이 사이에 베개를 넣어주며 애 낳는 광경을 연출시켰다. 나는 뭔지 모를 죄의식을 느끼며 그 이상한 놀음에 동조하지 않았다. 내 유년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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