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정엄마에게 다녀왔다.
구십이 낼모레인 엄마는 여전히 당신의 원칙대로 생활하고 계셨다.
이빨이 다 무너져 틀니로 생활하신지 몇년째인데다 이젠 그 틀니마저도 불편하여
음식도 제대로 드실 수가 없다. 그런데도 엄마는 늘 반찬을 열가지 정도는 만들어 놓고,
청소와 방걸레질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 쓰기는 중단하셨지만 틈틈이 메모하며
날마다 가계부를 적는다.
엄마는 지난 날 가게부를 보여주시며, 가게부를 기록한 덕에, 외숙모가 과거에 아버지가 돈 빌려가고 갚지 않았다고
자기 자식들과 친척들에게 모함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고 하셨다.
엄마가 기록하는 건 그뿐만이 아니다. 엄마의 메모장을 들추다 보니, 이런 문구도 적혀 있었다.
'그랑페롤은 비타민이다'
나는 그만 크크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마도 어느 날 누군가가 엄마에게 그랑페롤을 사다드린 모양이다.
어쩌면 그게 나일 수도 있겠다. 엄마는 생소한 이름의 약을 두고 혹시라고 그 약의 용처를 혼돈할까봐
당신의 수첩에 기록해두신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