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세가지 소원

tlsdkssk 2014. 8. 14. 17:03

'세가지 소원'이란 프랑스 민화를 처음 접한 건 서른 중후반 무렵이었을 것이다.

내용인즉 이러하다.

가난한 나무꾼 부부에게 어느날 천사가 나타나 세가지 소원을 말하면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나무꾼의 아내는 마침 소세지가 먹고 싶었던 참이라 천사에게 소세지를 청한다.

이에 나무꾼 남편은 발끈하고 만다. 부귀 영화와 같은 화려한 소원을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아내가 소시지 같은 하찮은 것으로 한가지를 써버렸으니...

화가 난 남편은 천사에게 그 소시지가 아내의 코에 붙게 해달라고 청한다. 그러자 아내의 코엔 소시지가 

들러붙게 되어 결국 남은 한가지 소원은 아내의 코에 달린 소시지를 떼어달라 하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된다. 

그 얘기를 듣고나서 나는 종종 나의 세가지 소원에 대해 자문하곤 했다.

만약 내게도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 세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면 무슨 소원부터 말해야 할 것인가,로부터 시작된

물음은 내가 인생에서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로 번져 나가며 때론 나를 곤혹스럽게까지 하는 것이었다.

만약에 내가 부를 청했다고 하면 그 부가 이루어짐으로서 파생할 수 있는 문제가 걱정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사치, 게으름, 교만, 돈에 대한 집착....

살아오는 동안 졸부들의 행태를 적지않이 봐왔기 때문인지 내가 급작스런 부를 움켜쥐게 되었을 때  과연 얼마만큼

우아하게 그 돈을 관리하게 될지에 대해 장담할 수가 없었다.

당시 요즘 로또에 해당하는 주택복권이라는 게 있었다. 최고 금액이 1억원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나는 이따금 주택복권을 사면서 1등 담첨이 되는 공상을 해보곤 했다. 1등이 되면 내가 할 일에 대해서도 계획을 세워두었다.

일단은 하느님께 감사의 십일조를 바쳐야 할 것이다. 그 다음엔 해외 여행도 즐기고 싶었다. 물론 아파트도 구입해야 했다. 게다가 불우이웃도 도와야 하고 동생에게 빌리고 갚지 못한 남편의 사업 자금도 갚아야 했다.

그 많던 1억이란 거금이 세금 떼고 십일조 떼고 하다보니 부스러지기 시작하는 걸 보며 나는 슬슬 욕심이 동하기 시작했다.

1억을 온전히 지녀야 아파트를 장만하게 될 텐데, 십일조고 뭐고 다 아깝구나, 아까워.

차라리 1등이 안되고 천만원이나 몇 백만원의 몫돈이 생기면 생활비에 보태며  번민이 덜할 것만 같았다.

 

그즈음이었을까, 어느 교우가 내게 자신의 소원을 적어 성경 갈피에 껴놓고 늘 기도를 하면 그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믿든 말든 그 방법은 소탈해서 내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몇 가지를 적어 성경 갈피에 끼워두었으나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다.

오늘 오후 예전에 보던 그 성경책을 꺼내보니 그 안에서 빛 바랜 메모지가 한장 나온다.

이런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1)30평대 아파트(당시 나는 남편의 일로 아파트를 날리고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다)

2)노경의 조촐한 안락

3)고목과도 같은 삶

4)彬의 진로가 계획대로 넓혀지기를 희망함

5)풍성한 창작

 

이제 보니 소원이란게  별로 구체적이질 못한 것 같다. 그 다섯가지 항목 중엔 이미 이룬 것도 있고 애매한 것도 있는 것 같다.

다시 나의 세가지 소원 목록을 정해놓고 성경 갈피에 끼워 놓아야 할 것 같다.

한데 무어라 적어야 할 것인가.

다급한 것이 많다보니 나는 그저 넋을 놓고 있을 뿐이다.

정신이 방전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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