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까페 안나

tlsdkssk 2014. 6. 3.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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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까페 대신 다방 문화가 있었다. 다방도  등급이 있고 이용 계층도 달라,

문화 예술인들이 드나드는 문화스런 다방이 있는가 하면 다방 레지의 엉덩이나 만져 볼 꿈에 젖어

늙은 오빠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노땅들의 다방도 있었다.

아무려나, 그 시절(고딩 때다) 나의 장래 희망 중 하나는 다방 마담(사장)이 되는 거였다. 대학 진학을 안 하고 그 돈을 부모님께 미리 달라고 하여 아담한 까페 하나를 차리고 싶었다. 요즘으로 치면 북 까페 분위기를 꿈 꾼 것 같다. 물론 손님 층도 문화 예술인으로 제한하고 음악도 오직 고전 음악으로만 채울 생각이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쓴 프랑스의 소설가 '프랑소아즈 사강'처럼 내 까페에서 명작을 탄생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꿈은 버얼써 전에 사라졌다. 아버지의 공장은 문을 닫았고 집안엔 몸져 누운 아버지와 다섯 식구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엄마가 아버지보다도 굳건하게 집을 지키고 있었기에 나는 차마 다방 마담이 되고 싶다는 꿈을 실토할 수 없었다. 만에 하나 그 얘기를 꺼냈다간 엄마에게 욕이나 바가지로 얻어 먹었을 거다.

"이 미친 년아, 그래 고생고생해서 키워 놨더니 뭐야? 다방을 차리고 싶다고?"

울 엄니는 딸들에겐 입이 걸었으니 분명 이렇게 욕했을 게 뻔하다.

신산한 삶에 대한 욕구불만과 분노를 다 나한테 투사하여 쏟아부었을 게 틀림없다.

물론 나는 그 욕을 피하기 위해 아무에게도 내 꿈을 말하지 않았다. 오직 한 사람 내 친구 H에게만 실토하였다. 훗날 정신과의사가 된 그 친구는 나의 허무맹랑한 꿈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고,

내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를 이해해 주었다.

나는 내 꿈을 또 한 사람에게 슬쩍 흘렸다. 나중에 내 남편이 된 L씨에게 말한 것이다.

그는 내 꿈을 지지해주었고 자기가 그 힘이 돼주겠노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혹하여 그랑 결혼하고 말았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하던 아버지에게 따귀까지 맞아가면서.... 

내 결혼을 찬성해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상도 하지, 어쩌면 단 한사람도 없었을까. 미스터리다.

 

 

아래의 사진을 보라

이   여자가 2년 전에 몇 천원을 주고 마련한 나의 미니어처 까페건물이다.

까페 뒤엔 정원이나 숲이 있었으면 해서 모조 나무도 들여 놓았다. 까페 건물 옆에 내가 살 벽돌집 한채도 구입하였다.

나는 한가한 시간이 날 적 마다 이 까페로 들어가보곤 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행복해진다.

한데 이제 나는 진짜 까페 마담이 된 것 같다.

글쎄 문우들이 우리 집(아파트)을 '민혜 까페'라고 부르지 않는가.

나는 그들에게 한 번도 우리 집을 까페라고 불러달라 한 적이 없었다.

우리 집엔 주로 문화예술인들이 드나든다. 그러니 내 꿈이 이루어 진 셈 아닌가.

내가 '부레옥잠이 있는 연못'이란 수필에서도 말했듯,

미니어처로 만들면 못 이룰 꿈이 없는 것 같다.

오는 11일이면 문우들 몇이 우리 집으로 온다. 내 까페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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