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힐링 에세이/ 닮은 꼴 찾기

tlsdkssk 2014. 7. 5. 05:32

 

  • 입력 : 2014.07.04 02:28

    (박지혜 기자 = digitaljh@chosun.com) 디지틀조선일보는 매주 1회 칼럼 및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풍부한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글 속에서 삶의 지혜와 인생의 용기, 치유의 힘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닮은 꼴 찾기>

                                                                                                                                                민 혜

       
                                                                       

    나보다 8년 연상에, 서울대 영문과 출신에, 전직 교사에, 시집살이 반듯하게 해내고, 부부 금슬 그림 같고, 자식 성공 시키고, 재력까지 탄탄한 L 선생은 수필가라는 것 외엔 나와 도무지 닮은 게 없다. 

    그런 그녀가 웬일로 작년부터 한번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다. 처음엔 그냥 하는 말이려니 하고 무심히 넘겼다. 잊을 만하면 그녀는 다시 문자를 보내왔다. 문자 끝에 하트를 찍어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느 날 내가 물었다.

      "선생님, 저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인데, 저를 만나 무얼 하시려구요?" 
      "민혜 씨와 있으면 아무 말을 안 하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아서요. 왠지 그럴 것 같네요."
     
    그 한 마디에 취하여 덥석 제의를 수락했다. 그녀는 아이처럼 좋아하며 약속 날짜와 장소를 잡았다. 인사동 부근의 어느 호텔 식당에서 12시에 만나 점심부터 들자는 것. L 선생과 만난 곳은 이태리 식 뷔페였는데, 음식 모두가 내 입에 착착 붙고 커피 맛도 각별했다. 오죽했으면 12시 이후엔 절대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내가 금기를 깨고 커피를 두 잔 하고도 1/2잔이나 마셨을까. 순백색 커피 잔의 질감은 매우 두툼하고 다소 무겁게 느껴졌다. 그녀가 말했다.
     

     "사위를 만나면 우리 둘의 공통점이 22가지나 된다고 좋아하는데, 우리 사위(프랑스인이다)도 나처럼 두툼한 잔에 마시는 걸 좋아해요. 입에 와 닿는 부분이 입술 두께 정도가 되면 커피 맛이 확연히 다르지요."
      입술 두께? 기가 막혀! 적당히 맞장구를 칠까하다가 나는 내 식대로 직설화법을 늘어놓았다.
      "ㅎㅎㅎ, 저는요 제가 특별히 관심 두는 것 외엔 아주 둔감해요. 커피 잔의 두께 같은 건  신경 써 본적이 없어요."

    나도 집에 여러 개의 머그가 있지만 그 중 가장 두께 얇고 가벼운 잔으로만 골라 마신다. 원두커피 놔두고도 귀찮다며 봉지 커피나 마시는 위인이다. 대화가 이렇듯 수준 차가 났기에 나는 약간 긴장했다. 다만 나를 초대해준 선생에 대한 고마움과 더불어 인문학적 지성과 인성 바른 그녀의 품위에 안도하며 남은 시간을 적당히 메우다 헤어질 생각이었다. 점심을 마친 우리는 인근 창덕궁으로 향해 고궁의 뜰을 한유하게 거닐었다. 작약이 한창이었다. 서로 꽃에 코를 박았다. 그녀가 뜬금없이 물었다.

      "민혜 씨, 스마트 폰 써요?" 
      "아뇨."
      "아니, 왜?"
      "기계치라…."(그러나 시대에 뒤지는 미개인이 될까봐 최근에 바꾸었다)
      "와~ 나도 그런데! 그럼 길은 잘 찾아요?"
      "아뇨, 길치에요."
      또 묻는다, 그녀가.
      "노래는 잘 해요? 춤은?"
      "아뇨, 노래 못해서 남 앞에선 절대 안 해요. 몸치라 춤도 뭣 춰요. 가무엔 젬병."

    점차 희색이 도는 그녀, 한 손을 내밀더니 "이럴 땐 서로 손을 마주 쳐야 해요." 하며 웃는다. 우리는 서로 과장되게 손뼉을 마주치며 깔깔거렸다. 웃음과 함께, 그녀와 나 사이를 가로막던 장벽이 맥없이 허물어지는 걸 느꼈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법, 의외로 간단하다. 피차 닮은꼴만 찾아내면 절반은 성공인 셈이다. 자랑스럽고 반짝이는 점 보다는 어수룩하거나 모자란 점을 찾는 게 한결 끈끈해지는 것 같으니, 개똥도 약에 쓸 때가 있다는 말씀.
     
    오늘 선생께 전화하며 ‘스마트 족’ 반열에 들었음을 자랑하려 했더니, 이런, 그녀도 그새 스마트 족이 되어 있질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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