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자 신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교황 권고'에 대한 보도를 읽었다.
"나는 자기 안위를 지키느라 속으로 병든 교회보다 길거리에 나가 있어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운 교회를 지키겠습니다." 라는 빈자를 위한 교회를 천명하는 말씀에 그만 가슴이 찡하였다.
교황과 교황청의 권력부터 약화시키겠다는 발상의 전환과 그 개혁의 태동이 가슴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십계명중의 하나인 '살인'에 대한 해석도 파격적이다.
그것은 곧 육신에 대한 물리적 살인만이 아닌, 오늘 날의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를 겨냥한 말씀이었다.
바로 그런 경제가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라는 것.
하물며 동성애자들을 향해서도 따듯한 시선을 보여주었다.
"동성애자가 선한 의지를 가지고 신을 찾는다면 무슨 권리로 비난하겠는가?"
최근에는 유부님과의 사이에서 임신을 하고 버림받은 한 여인이 보낸,
태어날 아기가 제대로 된 신앙 생활을 못할까봐 걱정된다는 내용의 편지를 읽고,
교황님이 직접 그 여성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만약 자매님 교구의 사제가 아이에게 세례를 주지 않는다면 나에게 데려오세요.
내가 직접 세례를 주겠습니다."
교황님은 가톨릭의 높은 혼배 조당의 벽을 허물어버리신 것이다.
교회의 율법이 아닌 사랑의 법을 택하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만세!
문득 k 신부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오래 전 내가 그분에게 성경 공부를 했던 시절 신부님은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느 고장에 한 남자의 첩으로 살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은 남편과의 사이에 자식에 여러 자식을 두었는데, 본부인이 이혼을 해주지 않는 바람에 자녀들에게 세례를 받게 할 수 없음을 고민하던 나머지 본당 신부를 찾아가 고민을 실토하였다.
본당 신부는 그 얘기를 듣고 고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과 전 부인은 서로 별거를 한지 오래이고 다만 이혼만 하지 않았을 뿐이라 그녀가 실제 부인과 다름 없었다. 하지만 혼배 조당에 걸려 그녀는 물론 자녀들도 교회를 다니는데 제약이 따랐다.
신부님은 교회법과 현실 문제를 두고 고민을 하던 나머지 교구 주교님을 찾아가 상담을 청하였다.
그 때 교구 주교님은 세례를 주라고 명하시며, 다만 그것을 공표하지는 말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그 얘기를 전해들으며, 만약 예수님이 그런 서제의 입장에 처하셨다면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생각해보았다. 인간은 결코 예수가 될 수 없지만, 믿는자들이라면 적어도 예수의 세포 흉내라도 내면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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