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낯선 여자와의 20분

tlsdkssk 2013. 8. 24. 08:12

어제 밤 9시 조금 못되어 길고양이 먹이를 주기 위해 아파트 공원으로 나섰다.

아들 집 냉동실에 유효기간을 한달 넘긴 미트볼이 있기에 조리를 하려 했더니,

아들이 펄쩍 뛰며 버리라고 한다.

요즘 젊은 것들은 음식 버리는 걸 종잇장 버리듯 하는 것 같다.

나는 아들 몰래 일부를 먹고 남은 걸 집으로 싸가지고 왔다.

 

어제  미트볼을 익힌 다음 고양이에게 포식이나 시키려고 밖으로 나왔다.

예서제서 고양이들이 눈에 불을 밝히며 어슬렁 거린다.

봉지에 담은 미트볼을 조금씩 흘려주며 어린 고양이들이 많이 있는 관리소 근처로 향했다.

요즘 그곳엔 어린 고양이 세마리가 자주 눈에 뜨였다.

아마도 여름에 태어난 녀석들인가본데, 형제들끼리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었다. 

내가 미트볼을 던지자 녀석들은 조심스레 하나씩 물고 저만치 물러갔다.

그때였다. 웬 아주머니가 나처럼 봉지를 들고 내 근처로 오더니,

"어머나, 고양이 먹이를 주시는가 봐요. 제가 아까 삶은 계란을 좀 주고 갔는데..."한다.

나는,

"일부러 계란까지 삶아다 주세요? 저는 그저  멸치 국물 우리고 남은 것 있으면 갔다 주는 정도예요.

오늘은 유효기간 지난 미트볼이 있기에 삶아서 가지고 왔죠."

그녀는 우리 단지가 아닌 3단지에 살고 있다고 했다. 밤 운동 삼아 돌면서 틈틈이 길냥이들 먹이를 챙긴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집에 길냥이를 6마리나 키우고 있다고 한다.

나는 7년 전 길냥이 새끼를 데려다 키우려 했다 실패한 얘기를 늘어놓으며 어떻게 길냥이를 키우는가 물었더니,

지난 겨울 임신하여 배가 축 늘어진 고양이를 보고 아무래도 겨울 날 출산이 힘들 것 같아

집으로 데려왔다는 거였다. 나는 반색을 하며 말했다.

"반갑네요. 고양이를 사랑하시는 이웃을 만나서요."   

그녀는 그 길냥이 새끼 가운데 아주 똑똑한 놈이 있다며 그 녀석은 오줌을 쌀 때 하수도 구멍에 대고 싼다는 거였다.

그리고 틈틈이 자기에게 "야옹"하며 말을 건네온다는 것이다.

나도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

엘리 보는 일만 없었다면 그녀에게 한 마리 달라고 했을 것이나 

틈틈이 아파트 길냥이들에게 먹이나 주면서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20분 남짓 그녀와 얘기를 한 것 같다.

마음 같아선 "우리 집에 가셔서 차나 한잔 하시죠."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어제 어둠 속에서나마 그녀의 인상을 잘 봐두었으니, 언제고 낮에 그녀를 만나는 일이 있으면

이번엔 1시간쯤 얘기 나누고 싶다.

그녀는 우리 단지 길냥이의 성격까지 다 꿰고 있는 것 같았다.

어제 검정 고양이 한 마리를 가리키며,

"얘는 길냥이답지 않게 사회성이 아주 좋아요. 보세요, 만져줘도 가만 있잖아요." 하기에 나도 그 검정냥이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녀는 한 술 더 떴다.

"얘는 아마 불임수술을 시킨 고양이 일 거예요. 시술을 받은 고양이는 귀끝을 조금 자른다고 하네요."

길냥이와 그녀로 인해 뜻하지 않은 20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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