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는 벌써부터 고민이 많아. 내년에 학교 갈 일이 그중 하나지.
힉교가는 게 겁나는 건,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매운 음식을 전혀 못 먹고, 아주아주 느리게 먹는다는 사실 때문이야.
나는 엘리 밥 먹이는 일이 가장 힘들어. 걔는 밥 먹다 말고 딴청하거나 입 다물고 뭔가를 생각하거나
이것저것 끼어들며 잔말 하느라, 잔소리와 야단을 곁들이지 않으면 2시간도 걸릴 거야.
그래서 유치원 선생은 엘리에게 밥을 아주 조금 주는 것 같아.
왜냐면 워낙 늦게 먹으니 할 수 없는 일이잖여.
며칠 전, 엘리가 내게 특청을 했어.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자기 반찬을 아주 조금씩만 매운 것도 해달라는 거야.
옳거니, 잘 됐다 싶어 어제 아침엔 떡뽁이를 해줬어. 야채와 소시지를 곁들여서 아주 눈꼼만치만 맵게 고추장을
반티스픈 넣었지. 그래도 색은 붉으데데했어.
나는 상을 차려주며 매울 때 마시라고 우유(는 밥먹을 때 물 대신 늘 마시지만)와 요구르트를 곁들여 놨어.
엘리는 한 입 먹더니 맴다고 난리치며 우유와 요구르트를 번갈아 마셨어.
나는 그 때마다 짱!짱!!하면서 박수를 쳤어. 그랬더니 고것이 제법 먹기 시작했어.
나는 계속 꿍짝꿍짝을 넣었어.
이젠 학교가도 아무 일 없겠다고, 이렇게 매운 걸 잘 먹으니 학교 김치도 잘 먹을 거라고...
그랬더니, 요것이 자기 아빠에가 자랑해주고 해외 나가 있는 엄마에게 카톡도 보내달래.
어제 오후에 유치원 끝나고 미술학원엘 갔는데, 물론 미술 학원에 가서도 원장에게 매운 떢복이 먹은 걸
자랑하더라구. 그러면서, 깜빡하고 유치원 선생님한테 그 얘기 못했다고 속상해 하더라고.
이 보다 더 큰 자랑은 잠 잘 때 일어났어.
엘리랑 함께 침대에 누워 <녹슨 못이 된 솔로몬>이라는 아주 잼나는 동화책을 읽고 자려고 하는데
엘리가 기도하다면 내 무릎에 앉는 거야.
어제는 기도를 점잖게 하지 않고 동화처럼 했어. 우선 엘리가 말을 잘 들은 것을 하느님께 아뢰고,
다른 얘기 하려는데, 엘리 왈,
"할머니, 내가 떡 볶이 먹은 얘기도 하세요."
하질 않겠어.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 오늘 엘리가 용감하게 매운 떡볶이를 먹었어요.
앞으론도 매운 걸 잘 먹게 해주세요."
했지,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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