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엘리와 보내고 왔다.
엘리와 지내는 시간이란 중도라는 게 거의 없어, 즐겁든지 고되든지 둘 중의 하나다.
나는 가급적 즐겁게 지낼 수 있기를 희망하나 고것이 떼를 쓰고 울고불고 할 때는 할 수 없이
우아할머니 모드를 버리고 도깨비 할머니 작전으로 들어간다.
다만 겁많은 토끼같은 엘리의 입장을 참작해 도깨비할머니의 뿔난 지수를 예고해주는 편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함머니가 지금 도깨비가 되려고 하고 있어.(양 손을 머리에 대고)이것봐, 뿔이 지금 치솟으려고 준비하고 있잖아.
이 뿔이 다 나오면 넌 도깨비 밥이 되는 거야. (소리를 꽥 지르며) 알았어? 도깨비가 몽둥이 가지고 너를 때릴지도 몰라.
왜 착한 할머니를 자꾸 도깨비 만드는 거야?"
그러면 토끼 손녀는 이렇게 응수한다.
"내가 잘못했다고 하면 그 뿔이 들어가나요?"
손녀가 눈치빠르게 이쯤 상황을 파악하면 나는 손으로 만든 뿔을 집어 넣으며,
"지금 도깨비 뿔이 조금은 들어갔지만, 언제 다시 나올지 몰라. 그러니 조심해! (다시 큰 소리를 지르며)알았어?" 한다
둘이 미술 대회를 갖는 시간을 만들기도 했다.
엘리의 동화 책중 그림이 아주 아름다운 책이 있기에 그 책을 함께 보면서 그리고 싶은 장면을 그려보자고 했다.
엘리는 뭔가를 그리면서도 내 그림을 흘낏 훔쳐보며 내 그림 흉내를 낸다.
나는 엘리의 그림이 더 마음에 들어 엘리의 것을 한참씩 바라보기도 했다.
엘리는 동화 속에 나오는 , 작아진 접시 위 사자를 그렸고, 나는 어미 잃은 숲속의 가젤을 그려보았다.
크레파스로 화사하게 색을 입히니 보기에 좋아 우리 둘의 그림을 거실에 붙쳐 놓았다.
조손의 합동 미술 전시회라고나 할까.
엘리는 이런 시간들이 몹시 즐거웠던 모양인지, 어제 밤 집으로 돌아가려는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할머니가 그낭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나는 그냥 웃기만 했지만, 속으론,
"그랬다가 이 할미가 제 명에 못 죽는다." 하며 킬킬 웃었다.
암튼 토끼가 이 도깨비를 사랑해준다는 건 행복한 일 아니겠는가.
엘리에게 재밌는 할머니로 기억되고 싶다.
아침에 잠을 깨울 적 마다, 엘리 등을 피어노 건반 삼아,
"미쏠도미쏠 파랄라 쏠시레파미레도....."하며 '옹달샘'을 연주해주면(엘리는 피아노를 배우고 있음) ,
엘리는 간지러워서 잠을 깨곤 한다.
이 작전으로 안 되면 나는 '바윗돌 작전'으로 돌입하여 산사태가 나서 구르는 바윗돌 마냥 내 온 몸으로 엘리를 덮친다.
엘리는 꽥꽥 비명을 내지르지만 그래도 재밌는지,
"또 바윗돌 해봐. 또 바윗돌!" 하다가 결국은 잠이 깨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