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을 꿈꿔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도 전원주택을 열심히 꿈 꾼 적이 있었다.
숲속의 오두막집이라 해도 좋고,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도 좋고, 아무튼 공기 탁한 도심을 떠나 흰구름처럼
유유히 살고 싶었다.
작년 7월, 천안시에서 20분쯤 들어가는 목천읍에 작은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한 것은
바로 전원주택에 대한 로망 때문이었다.
경제적 능력도 없지만 설령 뒷받침이 된다 해도 이제는 나 혼자 전원주택을 지니고 살만한 뱃장도 없기에 차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서울에서 살다가 그 곳으로 이사한 친척 오빠를 방문했다가 졸지에 벌린 일이었다.
그 날로 부동산을 찾아가 집을 계약하고(돈을 가져간 것도 아닌데) 전세 놔줄 것을 부탁한 후 서울로 돌아왔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을 볶아 먹은 것이다.
처음 가는 곳이지만, 어릴 적 여름방학 때마다 목천의 외가에 가곤 했기에 심정적으론 낯선 동네가 아니었다.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이 혀를 내둘렀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담대한 인간이기라도 한 듯 홀로 여유만만하게 미소를 지었다.
언제고, 그곳으로 떠나리라, 떠나리라, 떠나고 말리라. 나는 날마다 아파트 뒤쪽으로 난 숲길을 산책할 것이고,
큰 길 따라 끝 간 데 모르게 이어진 논길을 걸어가리라.
그러면서 당장이라도 이사를 갈 것처럼 세간을 없애기 시작했다. 옷을 버리고, 책을 버리고 가구를 버리고....
몇 달 후 친구 차를 타고 그 아파트 단지를 다시 찾아갔다.
가는 동안 내내 친구에게 그곳의 경관을 말해 주었다. 아파트는 작지만 단지는 제법 커서 웬만한 편의 시설이 갖춰져 있고,
주변은 산과 논이 많아 매우 전원적인 동네라고...
친구와 같이 아파트 주변을 돌아본 뒤 나는 차를 몰고 좀더 가줄 것을 부탁하였다..
"여기서 더 가면 독립기념관이 나오고, 더 가면 외가가 있던 마을이 나오는데, 가는 길 내내 논들이 보여 드라이브 하기에도 좋을 거야.."하면서.
친구는 쾌히 차를 몰아주었다. 한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논은 커녕 즐비한 상가와 건물과 아파트단지만 보이지 않는가.
아파트를 계약하던 날 나는 분명 푸른 들판을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린 시절에 보았던 광경들만 떠올리고 나는 푸른 들판이 당연히 있다고 여긴 것이다.
하여 나의 로망은 노망 비슷하게 되고 말았지만 다행이도 아파트 가격이 조금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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