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진종일 행복했다. 새로 산 이불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인견이불 사러갈 생각으로 들썩거렸다. 평소 안방에만 들어가면 가구와 이불 색상의 부조화로
마음이 불편하곤 했던 터다.
내 나이쯤이면 쓸만한 가구로 바꿀 때도 되었 건만 우리 집 가구란 하나같이 중저가품 고물들,
나의 드높으신(?) 심미안으로 볼 때 하나같이 부적격품들인 것이다.
집이야 맘대로 바꾸지 못한다 해도 죽기 전에 가구 한번 확 바꿔보고 싶었다.
허나 가구를 바꾸려면 적잖은 돈이 필요하고 기왕이면 집수리도 해야 할 것 같아 포기하고 살아왔다.
그러던 참에 침대 이불을 바꾸기로 마음 먹었다. 집안의 컬러만 바뀌어도 기분이 새로워질 것이다.
재질은 누비 인견으로, 컬러는 청색과 회색으로 정했다.
엷은 브라운의 안방 가구엔 그 컬러가 시원하고 안정감을 줄 것이다. 쿠션 색깔이 보라색이니
청색과 회색과 보라가 주는 색감의 조화도 아름다울 것이고.
무난하게 흰색을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나는 흰 이불을 좋아하지도 않고
내 가구의 컬러와 어울리지 않는다.
동대문 종합 상가를 뒤져, 마음에 꼭 드는 건 아니어도 얼추 내가 원하던 청색 이불(겸 패드로 쓰이는)을
찾을 수 있었다. 단색이지만 인견이 주는 광택과 누비의 아름다움으로 단조롭지가 않아 좋았다.
밤에 새 이불에 누워 가실가실한 인견 누비의 감촉을 즐기려니 문득 남편 모습이 스친다.
살아가며 좋은 일이 있으면 떠나간 사람 생각으로 애잔해진다.
하지만 그가 있었다면 멀쩡한 이불 놔두고 새 이불을 샀다며 한 잔소리 했을 것이고,
나는 또 "이거 싼 거야."하며 둘러댔을 테지.
남은 나날, 내 분수껏 사치(?)하고 싶다.
나는 나 혼자 사는 나라의 여왕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