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버리는 즐거움

tlsdkssk 2012. 8. 16. 07:46

폭서가 난동을 부리기 바로 직전인  7월엔 큰 일을 저질렀다.

시골 모처에  내가 전원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작은 아파트를 마련하였다.

한번 들러본다고 내려갔다가 그 날로 계약을 해버렸다.

돈이 다 마련돼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홀린 듯 사고를 치고만 것이다.

2년 기한으로 전세를 놓았으니 이변이 없는 한 나는 2년 후엔 서울 생활을 청산하려고 한다. 

아파트를 계약하고 나서  나는 즉시 서가의 책을 절반 이상 없애버렸다.

그 아파트가  작은 평수라 지금  살림이 다 들어갈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인생의 황혼을 살고 있는 나로선 없애는 일이 더 자연스러운 건지도 모른다.

 

책을 들춰가며 작업을 하면 하나도 없앨 것이 없어, 우선 소설과 수필집 위주로 없애버렸다.

덩달아 가구도 일부 없애고 베란다 화초도 손질하였다.

내 목 높이가 넘도록 무럭무럭 자라준 남천 두 그루도 목을 쳐서 난장이를 만들어 놓았다.

남천은 목질이 제법 질기고 단단하여  적장의 목을 베는 장수처럼  식칼로 단숨에 쳐버렸다.

집에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밤 늦도록  버리는 일에 몰두하다가 잠시 주춤한 것은 견딜수 없는 더위 때문이었다.

이제 더위가 한풀 껶여으니 멈춘 작업을 다시금 이어갈 생각이다.

남천을 베기 전, 치고나면 후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 망설여졌다.

한 그루는 모연 선생이 이사 선물로 주신 게 아닌가.

게다가 식물이란 산소도 공급하고 푸르름을 보여주니 크고 많을 수록 좋지 않겠는가.

하지만 치고 나니 수세도 더 조촐하고 아담하니 보기에 좋고,

빽빽한 밀림(?)같기만 하던 시야가 여유롭게 변해 오히려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물질이란 그 어느 것이든 내 욕심의 산물일 수 밖에 없다.

최대를 누리며 사는 것도 기쁨일 수 있겠으나 최소한으로 살아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물론 나 정도를 두고 최소한이라 말하는 건 어불성설일 것이나 앞으론 크게, 크게가 아닌 작게 작게를 지향할 것이다.

하여 마침내는 세상의 모든 걸 버려두고 떠나는 일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편안해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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