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영정 사진에 대하여

tlsdkssk 2012. 6. 5. 08:39

친구 둘에 나까지 셋이서 미리 영정 사진을 찍어두자고 한 것은  10여년 전의 일이다.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만약 천수를 다한다면 너무 늙은 모습으로만

남을 것이 아니냐며 인생의 중반부쯤 되는 모습을 남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한데 간만에 만난 우리는 영정사진찍기라는 본래의 목적은 잊어버리고 친구 H의 차로

드라이브를 하며 하루를 질탕하게 즐기기에 바빴다.  당연히 그날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 후  혼자서라도 영정 사진을 찍겠다고 몇 번을 별렀지만 당장 급합 일도 아니고 해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그러던 터에 얼마 전 한양대에서 열린 창수문인회 워크샵에서 문인회 이 회장의 아이디어로

회원 모두가 단독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었다.

사진기사는 고맙게도 적당히 뽀샵 처리를 하여 회원들 얼굴의 잡티도 없애주고

주름의 흔적도 적당히 흐리게 하여 자연스런 성형을 해놓았다.

사진을 보는 나는 즉시 이것을 영정 사진으로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따로 사진관을 찾지 않아도 되게 생겼느니 얼마나 고마운지....

머리도 잘  다듬어 더 좋은 사진을 남기고 싶은 욕심이 없진 않으나 

영정 사진에 대한 숙제는 이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최근 들어 부쩍 잦게 내 죽음을 생각한다.

반년이 넘도록 지속되는 기침과 가래 때문에 약물 투여와 엑스레이 검사로 지새우다 보니 체력은 바닥이 나고

입맛을 완전히 상실해 요즘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한데 지난 번 종합병원 호흡기 내과를 찾아 진찰을 받았을 때 의사는

이번에 처방해주는 약을 먹고도 낫지 않으면  CT 검사를 하자고 했다.

오늘  다시 그 병원에 가는 날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번 약도 별 차도는 없다. 알러지가 아니라면 신체의 어딘가

단단히 문제가 생긴 것일 수도 있다는 예단을 하며,어쩌면 나는 이 병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가정까지 해본다.

나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미리 극단까지 가보는 남다른 버릇이 있다.

그래야 어떤 상황이 와도 대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찍은 사진을 영정 사진으로 굳히려 함은 2년 전 타계한 남편의 영정 사진과 

세월의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다. 

내가 얼마나 더 살다 죽을지는 모르지만 훗날 아들이 제 부모의 사진을 바라볼 때

부모간에 너무 간극이 큰 사진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영정 사진은 거의가 죽은 이의 최근 사진을 쓰게 마련이다.

팔십이 훨씬 넘어 타게한 어느 인테리 할머니는 자기 젊었을 적 사진을 영정 사진으로 사용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했다.  

하기사 한 인간이 태어나 보여진 모습이 호호백발만은 아닐 텐데 굳이 최후의 것을 영정 사진으로 쓸 이유는 없을 듯 하다.

인생의 반절쯤 되었을 때의 사진을 쓰는 게 좋을 듯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번 내 영정사진(?)은 늦은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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