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살 때엔 원칙 아닌 원칙이 있다.
남들이 권하거나 베스트 쎌러 목록에 든 것은 참고는 될 지언정 나에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매달 놀라울 정도로 책을 많이 구입하고 읽는 후배 P는 내게 종종 무슨무슨 책이 좋았으니
꼭 읽어보라는 말을 하곤 했지만 그녀의 추천으로 사 읽은 책들은
어째 내 구미에 맞지 않는 게 많았다.
며칠 전 종로에 갈 일이 있어 종로3가 지하철에서 내렸다.
출구를 찾아 나가려는데 도중에 간이 서점이 보인다.
참새가 방앗깐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나도 걸음을 멈추고 자력에 이끌리듯 일단 책들 앞으로 다가 갔다.
신문에 나오는 신간 안내를 읽고 사보고 싶었던책이 있었으나 제목이 떠오르질 않아
그냥 나의 감에 맡기기로 하고 책들을 훑기 시작했다.
김훈의 책이 눈에 띄어 일단 골라 잡았다. 김훈이라면 틀림없을 테니까.
바쁜 길이어서 그냥 김훈이라는 이름 두자만 보고 골랐다.
책방 주인은 그게 신간이라고 귀뜸했다.
그러다 얼마 전 P가 강추했던 알랭 드 보통의 책이 있길래 그것으로 다시 바꾸었다.
그리곤 칭찬에 대한 문고판 서적 하나를 추가 시켰다.
포인트가 적용되는 곳이 아니기에 많이 사고 싶지는 않았다.
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혹시나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이다.
차라리 김훈의 책을 살 것을....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대충 훑으며 책을 선별했을 텐데 생각하니 적잖이 속상했다.
젊은 날과 달리 책을 읽는 것이 힘들어진만큼 구미에 맞지 않는 책을 읽는 것은 정말로
따분한 일이다.
요즘 나에게 가장 좋은 책은 문고판 같이 가볍고 작은 책들로,
핸드백 속에 쏙 들어가고 값도 싸고 ,손에 답싹 안기어 페이지를 넘기기에도 편한 그런 책을이다.
하드 커버의 딱딱한 책들은 내겐 아주 불편한 책에 속한다.
그런 책들은 서가에 꽂아놓고 장식용으로 하면 모를까 나에겐 비호감이다.
근래의 책들은 책 표지에 필요없는(?) 것들을 추가함으로서 책을 사면 우선
신문 사이에끼어들어 온 찌라시를 솎아내듯 책을 감싸고 있는 귀찮은 치장부터 벗겨야 한다.
책도 상품인지라 어쩔 수 없이 과포장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일까.
연령층이 구별 돼 있는 옷처럼 때로는 책도 젊은 이 용과 노년층의 책으로
차별화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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