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선(善)의 진보를 꿈꾸며

tlsdkssk 2011. 10. 29. 09:11

좀 별난 구석이 있긴 했어도, 어릴 적부터 선善을 향한 관심에서

벗어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선이 무엇인지 몰라도, 최소한 나보다 약한 이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은 하면서 살아왔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엔 인근 명동 성당 내의 성바오로수도원에서 경영하던 고아원생들이

한반에 몇명씩은 있었다.  넉넉지 못하던 시절이라 교실엔 어려운 형펀의 애들이 많았어도

고아원 친구들은 여느 애들과  다르게 한눈에 표가 났다.

입는 옷이야 구제품이든 뭐든 그리 꿀리지 않게 입었지만

어딘가 그늘이 있고 침울했으며 주눅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애들을 위해 함께 놀아주었고 몇 번 학용품 같은 걸 사준 적도 있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4학년 때 힌 반이었던 대순이는 그들과 달리 명랑하고 솔직한 데가 있어

나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대순이를 만난 적이 있었다. 대순이는 얼굴이 희고 복스런 인상에

작은 눈은 아닌데도 웃으면 눈이 붙어버렸다.

어린 나는 왜 선을 지향했을까?

거기엔 내 천성도 작용했을 것이며 착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죵교 교육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선행의 다양성 속에서 내가 특별히 관심을 두었던 건 약자에 대해 내 깜냥껏 도움을 주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이런 일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았고 마음이 흡족하였다.

 

서른을  지나며 나는 조금 진화하엿던 것 같다.

성서에 나오는 '오른 손(왼손이 먼전가?)이 한 일을 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 아주 강하게 메아리치면서

지금까지 내가 행한 그 얇팍한 선이란 게 어느 의미에서 자기만족애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성서의 그 귀절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었다.

한 손이 한 일을 다른 한손이 모른다는 건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자기 행위를 의식조차 없이 행한다고 본다면 그 말이 성립된다.

고로 내가 선을 행해놓고  선을 행했노라 의식한다면 그건 자만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눔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베품을 받는 대상에 대한 인식이 없이

베푸는 자의 위치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빅토르 위고'의 말은 십분 되삭임할 여지가 있는 말이다.

내 주변의 기독교신자들 중엔(개신교 신자들 중에 이런 부류가 많았다)선을 베풀고 나서

나중에 천상상급을 받겠노라고 하는 말을 하는 이가 많았는데,

그럴 때 마다 내 가슴에선 뭔가 까칠한 돌기가 일어서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상급을 받으려 선을 행한다면 그건 거래가 아닐까.

인간으로 태어나 자기보다 약자를 돕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그 길만이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신주의의 팽배 속에서 사회적 약자가 악한 자로 전락되는 걸 왕왕 보아왔다.

6년 전인가,  임대 아파트촌의 어느 복지관에 논술지도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

초딩 1학년에서 6학년까지 60여명을 두 파트로 나누어 가르쳤는데

세달 만에 나는 두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한 마디로 그들 현실에서의 가난은 죄였고 악이었다.

아이들이 어쩌면 그렇게 사악하게 닳아져 있고, 욕설이 숨소리처럼 자연스럽게 나오는지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장래 희망에 대한 짧은 글짓기를 시켜보았더니 ,5학년짜리 한 학생은 은행강도를 하겠다고 적어 놓았다.

까닭을 묻자 돈을 쉽게 벌려면 그게 좋을 것 같아서란다.

물론 그 한마디로 그 아이의 진심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녀석은 단지 내 반응을 떠보고 싶기도 했을 것이며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도 작용했을 것이나,

언중유골이라고,  그 아이의 말 속엔 이런 것 말고도 아이 나름의 절망과 비꼬임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내가 어렸을 적엔 부자와 빈자의 어울림이 요즘 처럼 물과 기름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았고,

개천에서도 용이 났으며, 어릴 적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험난한 현실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어주어 주기도 했다.

허나 개천의 용이 사라진 시대의 그 말은 개뿔만도  못하다.

 

내 여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나 남은 기간만이라도 선에 참여하며 선의 진보를 꿈꾸고 싶다.

한데 인류라는 거대 개념을 사랑할 순 있어도 내 곁의 사람을 사랑하는 건 참으로 어렵다.

근래 나는 한 지인의 돈 부탁을 완만히 거절한 적이 있었다.

약간의 여유가 있었음에도 나는 거절하고 말았다.

언젠가 그녀에게 도움을 주고도 그녀의 배은(돈을 떼였으며, 그럼에도 다시 빌려주었지만

빌려준 돈을 받을 때마다 적반하장의 불쾌감을 느꼈다)을 보았기 때문이었는데

나는 한 번 당한 사람에겐 절대 (?)도움을 주지 않는다.

순수와 순진이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볼 때, 나는 순수한 선의 진보를 꿈꾸는 것이지

순진한 선의 진보를 꿈꾸는 건 아니므로.

내게 바라노니 선이란 의식조차 갖지 말도록 하자. 

 

<속필로 써내리다 보니문장 정리가 엉망인 것 같지만 오늘은 이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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