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가을 햇살을 즐기며

tlsdkssk 2011. 9. 27. 13:15

봄도 그러하나 요즘 가을은 노루꼬리만큼이나 짧다.

가을이 되어도 아직 여름날 된 더위의 잔열이 남아 있는 얼치기 나날이 지속되다가 

구렁이 담 넘듯 어물쩡 겨울로 넘어가는 게 요즘 우리나라 가을 아닌가.

봄날이 가도 서글프나 가을이 가는 건 더 서럽다.

봄날이야 가버린다 해도 생명은 이어지고, 아니 오히려 그 생명은 열정으로 확산되어 누리를 채우나,

가을의 끝이 되면 사위엔 생명이 휘젓다간 자국만 보일 뿐  침묵과 죽음의 시간이 찾아드는 때문이다.

뽀송하고 탱탱한 가을볕을 쬐는 건 그래서 더 귀하고 행복하다.

쨍 소리라도 들릴 듯한 이 양질의 햇볕을 쪼인다는 건

다람쥐가 겨우살이를 위해 알밤을 모으는 것 만큼이나 소중하다.

억만금의 다이아몬드를 주고도 살 수 없는 가을 햇살을 즐기며

나는 문득 페이터의 산문을 떠올린다.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고 사는 것이되

일정치는 않지만 집행유예를 받고 있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막간에 해당하는 시간 속에 존재하며

우리가 서 있는 장소는 우리를 알지 못한다.

혹자는 이 막간을 멍청하게 보내고,

혹자는 정열에다 소비하고,

가장 현명한 자들은 예술과 노래로 보낸다.'

우리에게 허용된 한가지 기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 막간이라는 유한한 시간을 확장하는 것이며

그 한정된 시간 속에다 될 수 있으면 많은 맥박을 주입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특히 가을에 읽으면 맛이 나는 대목이다.

집행유예를 받고 있는 나 그리고 우리들,

이제 머잖아 계절은 죽음을 향해 달리니  막간의 이 가을이

더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한정된 시간속에 더 많은 맥박을 주입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숙고해봐야 할 일이다.

어쩌면 숙고하는 사이에 가을이다 가버릴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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