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아들이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승용차 뒷자리 오른 편엔 엘리가 카시트에 앉아 아이패드를 가지고 놀고 있고
나는 모처럼 아들과 시장 선거 얘기를 비롯해 두서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이번 주는 아들 대학원 중간고사 준비 관게로 주말도 쉬지 못하고 아들 집에 붙잡혀 보냈다.
며늘이 장기 근무로 미국엘 가는 바람에 무려 6일간 이나 말이다.
그 기간 동안 내내 허리가 아팠지만 쉴 수조차 없었다.
아들은 출근을 할 때마다 엘리에게 할머니 말씀 잘 들으라는 말과 함께
"엄마, 편히 쉬세요. 아무 것도 하지 말고..."했다.
울 아들, 말 한번 잘 한다.
만 네 돌도 안된 아이가 어찌 할머니 말씀을 잘 들을 것이며, 철 없는 어린 것을 맡고 있는 형편에
어찌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제 입에 들어가는 음식은 누가 만들 것인가.
연 이틀 아침에 아들에게 떡볶이를 만들어 주었다.
떡 보다 다른 재료가 더 많이 들어간, 나로서는 영양을 최대한도록 고려한 엄마표 떡볶이를.
양파(흰색, 보라색), 당근, 마늘, 부로콜리, 버섯, 찐 게란, 어묵. 대파...를 넣고 하였으니
웬만한 밥보다 나을 것이다. 만약 그 재료로 반찬을 만들었다면 아들은 식욕 없는 아침에 그처럼 많이
먹고 출근하지는 않았을 것같다.
떡볶이는 그 많은 야채를 넣었음에도 숨 죽은 야채가 떡의 찰기에 착 들러 붙어 있는 것이 시각적으로
별로 많은 양이 아닌 듯한 착시효과를 내었다.
거기에 우유 한잔과 포도, 사과, 감을 조금씩 곁들여 주었다.
아들은 입맛에 맞았는지 어느 것 하나 남기지 않고 싹 비우고 나가 이 어미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었다.
아들은 내가 없는 날이면 아침을 거의 거르고 나간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며늘이 일일이 챙겨주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그 생활이 정착되다 보니
며늘은 각자 식사는 각자가 해결하는 것으로 굳히고 착실히 그 룰을 지키는 것 같았다.
어머니와 아내란 그런 점에서 차이가 난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계산하지 않으나
아내는 남편과 동일 선상이기에 손해보지 않으려 하는 심리가 잠재되어 있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희생은 팔이 안으로 굽는 것처럼 자연스런 일이나
아내가 남편을 위해 희생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며늘의 그런 깐깐한 태도가 어떤 땐 나를 서운하게 했지만 그럴 때 마다, 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아직은 내가 건재하니 네가 못하는 것은 내가 다 채워주마. 네 것까지...'
나는 아들과 며늘을 위해 위해 볶음밥을 만들어 냉동실에 한끼 분량씩 얼려 놓곤 한다.
볶음밥은 고기와 야채를 고루고루 넣되, 김치 볶음밥, 카레 볶읍밥, 스파게티 소스를 넣은
볶음밥 등으로 질리지 않게 마련한다.
늘 바삐 쫓기는 아들 며느리는 먹어치우기는 잘 하면서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은 드물었다.
알아주거나 말거나 나는 내 몫을 충실히 하고 싶을 뿐이다.
내 몸이 좀 고달프면 아들 며늘이 라면 따위로 끼니를 대신하는 불행한 일은 적어질 테니까.
며늘이 새벽 근무를 나가는 날 혼자 일어나 컵 라면 하나 먹고 나가는 걸 본 이후론,
나도 일찍 일어나 소면을 삶고 전날 끓여 놓은 국물(멸치, 다시마, 표고, 양파 등을 넣어 끓인 국물)을 부은 뒤
김가루와 게란 지단, 호박 볶음을 얹어 먹여 보낸다. 김치도 먹으라고 잔소리(?) 한다.
며늘은 컵 라면을 먹을 때도 김치 없이 라면만 달랑 먹기에 곁들이는 잔소리다.
음식을 께작께작 먹는 편인 며늘이 잔치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나가는 걸 보면
내 마음도 불러진다.
어제 밤 아들이 나를 데려다주고 돌아간 뒤 문자를 보내왔다.
<사랑하고 감사드리며 존경하는 엄마, 아들 잘 도착했습니다.
따뜻하게 하고 주무세요.>
나는 간단한 답신과 함께 빨간 하트 세개를 꾹꾹 꾹 눌러 보냈다.
하트 세개의 의미는 아들, 며늘, 손녀에 대한 나의 사랑을 의미하는 동시
사랑하고 감사하고 존경까지 해주어 고맙다는 내 사랑의 고백이기도 했던 것이다.
아들 집에서는 아들 며늘 손녀 먹이느라 주방에 붙어사는 내가
내 집으로만 돌아오면 지극히 간단한 식사로 끼니를 떼운다는 걸 아들은 알까?
하지만 오늘은 내가 나를 잘 먹여야 겠다. 나에게도 하트 세개를 눌러주며....
'내 마음 한자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품 (0) | 2011.10.20 |
---|---|
천둥을 어디에 버릴까 (0) | 2011.10.16 |
혼자라는 건 (0) | 2011.10.09 |
스티브 잡스의 도(道) (0) | 2011.10.07 |
행복한 그림 (0) | 2011.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