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큰 외삼촌,
저예요,
당신의 조카,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막내 누이동생 삼분의 둘째 딸.
살아계셨다면 이미 구십 넘은 고령이시겠지만, 당신은 언제나 청년으로
제 가슴 속에 살아있어요.
며칠 전 저는 또 엄마에게 당신의 얘기를 물었어요.
그간 엄마에게 당신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일말의 여지를 남겨 놓고 있었지요.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은 가일층 미화된다는 것,
기억은 불확실할 수도 있다는 걸 말입니다.
당신은 키도 훤출하고 외모도 준수하셨지만 더더욱 저를 흠입하는 건
당신의 진보적인 사상과 나라 사랑과 참 교육자로서의 스승상을 지니셨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버이에겐 더할나위 없는 효자였으며 교육자로 독립운동가로 로맨티스트로
젊은 혼을 불태우다 스물일곱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시었습니다.
당신은 교육의 중요성과 남녀차별의 폐단을 일찌감치 절감하시고 외할아버지를 설득하여
우리 엄마를 학교에 보낸 분이시지요.
할아버지가 그예 학교를 못가게 하시자 엄마를 서울로 도망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시구요.
정말로 멋진 당신, 그 일만 떠올리노라면 제 가슴은 지금도 이리 뛴답니다.
당신에 대한 얘기가 가족을 통한 것이었다면 그건 가족들에 의한 과장된 견해일 수도 있을 테지만
당신에 대한 얘기는 당신의 제자에 의해 알려진 것이기에
저는 당신을 더더욱 존경하고 사랑하게 됐지요.
당신은 외할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자식이 없었던 큰할아버지 댁 양자로 가셨다지요.
경성사범을 졸업하고 충청도의 외진 마을 광덕국민학교로 부임을 하셨구요.
당신은 사볌학교 재학중이던 19세에 집안의 강요로 결혼을 해야만 하셨습니다.
당신은 이미 마음에 둔 처자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범학교에서 만난 개성 처녀, 개성 모 학교장의 따님이었다는 분 말이에요.
엄마에게 그녀를 본 적이 있느냐 물었더니,
"보다마다. 얼굴이 아주 인형처럼 예뻤다. 두 사람이 함께 광덕학교로 발령을 받아
그 선생은 방을 얻어 자취를 하고 있었지. "하셨습니다.
길이 Y자로 난 그 마을에서 그 선생은 외삼촌과 저만치 떨어진 집에 살았고 V로 만나는 지점에서
늘 외삼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I자로 난 길을 거쳐 학교로 갔다고 합니다.
모르긴 해도 어느 날은 당신이 먼저 도착하여 그 선생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보지 않아도 나는 당신과 그녀가 얼마나 정이 깊게 들었을까 쉽게 상상할 수가 있지요.
그러나 당신은 이미 결혼을 한 기혼자. 마음의 갈등이 얼마나 컸을까요.
나는 또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돌아가신 외숙모도 미인이셨나요?"
아, 다행이 외숙모의 미모도 빠지지 않으셨던가봅니다.
게다가 국민학교시절엔 공부도 잘 한 재원이셨다구요.
외숙모에겐 H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녀는 군수의 딸로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신 여성이었지만
당신을 흠모하여 방학 때면 친구를 만나다는 명목으로 당신의 집에 와서
당신과 많은 얘기를 나누곤 하였답니다.
그녀는 당신의 막내누이동생, 우리 엄마에게 접근하여 은근히 당신의 소식을 묻기도 했다는군요.
엄마의 회상입니다.
"외삼촌을 따르는 신여성들이 많았단다. 그런데 그 여 선생에게 외삼촌은 깊은 사랑을 느꼈었나보다.
한 번은 그 선생과 만주로 도망을 가려 마음먹고 만주행 기차표를 예매까지 한 다음
소정리 역에서 그 여 선생이 오기를 기다리셨다고 하는구나. 한데 그 순간 외할머니 생각이 나서
발길을 되돌리셨다 하셨다. 외할머니를 생각하니 도저히 만주로 떠날수가 없으셨다는 거지.
골백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랑스런 큰 아들을 양자로 보내던 날,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큰 자식을 양자 보내는 법이 오디 있느냐 하시며 그리도 우셨다는데,
이런 어머니를 외삼촌이 어찌 저버릴수가 있었겠니. "
한번도 보지 못한 당신,
당신의 조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