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외삼촌,
그 여선생의 성이 임 씨라지요?
엄마가 그러셨어요. 그 임 선생은 외삼촌 때문에 시골 학교로 자원한 거였다구요.
그녀의 본가는 개성에 있고 부친은 학교장이었으며 서울에 거주하던 입장이었으니
굳이 광덕까지 내려오지 않아도 되었을 터이 건만 사랑을 따라 외진 곳까지 온 거겠지요.
외딴 곳에서 지취를 하고 있는 그녀가 당신은 얼마나 안쓰럽고 마음에 걸렸을까요.
보는 눈이 있어 당신의 마음도 다 들어내지 못하셨을 거에요.
그저 눈빛으로만 주고 받았겠지요.
외삼촌과 임선생은 3년이 못 되어 다시 대전으로 발령을 받았다지요.
정해진 임기보다 빨리 발령이 난 거였대요.
한데 임선생의 아버지가 눈치를 채었는지 그녀를 서울로 불러들였다면서요.
외삼촌과 그녀가 함께 만주로 도망가려 했던 게 그 부친에게까지 알려진 거였을까요.
군수의 딸이었던 H여사는 이름만 대면 웬만한 사람은 다 알 수 있을만큼 명사의 반열에 오른 사람입니다.
그녀의 따님 역시 어머니를 이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녀 역시 외삼촌을 사모하여 방학 때면 외삼촌을 찾아 내려와 외삼촌의 주위를 맴돌곤 했다지요.
외삼촌의 무엇이 뭍 여성들을 설레게 했던 걸까요.
당신이 교사 생활을 하시던 시절엔 제자들의 나이가 선생을 웃도는 학생들도 있었다면서요.
당신은 주로 5,6학년을 가르쳤고, 게중엔 나이 많은 학생들이 많아 처음 부임한 외삼촌을
골탕 먹이고 휘어잡으려 했지만 당신은 기지와 카리스마로 제자들을 제압하셨다죠.
뿐만 아니라 그 제자들의 취직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곳곳을 다니시며 애를 쓰셨다면서요.
외가댁엔 늘 예닐곱씩 되는 장정들이 묶곤 하였는데, 취직자리가 생겨도 제자들이 멀리 있으면
소식을 전하는 게 여의치 않기에 늘 당신 곁에 두고 제자들의 취업을 도와주곤 하셨다는 겁니다.
외조부는 늘 이런 점을 못마땅히 여기셨다지요. 벌어서 다 제자들 퍼주는 데 쏟는다시며....
배곯고 가난하던 시절이라 당신은 어떻게든 제자들을 먹고살게 하시려 혼신의 노력을 다 하신거였어요.
엄마는 이런 애기도 하십니다.
"광덕 학교에 오시어 외삼촌은 학교에 밴드부를 창설하셨어. 늦은 저녁까지 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 모아 놓고
지휘하시던 모숩이 생각나는구나. 얼마나 시장하셨을까."
그 애기를 듣는 순간 문득 <울지마 톤즈>의 고 이태석 신부님이 생각나더군요.
당신은 외조부가 엄마를 학교에 못 다니게 하시자. 엄마를 설득하여 서울로 도망가게 하셨어요.
충무로에서 서점을 하고 있던 이모네로 보내신 거지요.
외삼촌은 엄마를 서울로 보내며 엄마가 지켜야 할 십계명을 적어 주셨다면서요.
엄마에게 십계명을 주시며 이걸 잘 지키고 있으면 내가 너를 꼭 일본으로 유학 보내어
너만은 반드시 신여성을 만들어 좋겠다는 다짐과 함께요.
엄마 아래로 작은 외삼촌도 있었지만 당신은 엄마를 점찍으셨던 겁니다.
남녀 가리지 않는 당신의 진보적 사고가 작용한 때문이었을까요.
하지만 당신은 제자들 취업 알선을 위해 동분서주 하시다 장티부스에 걸리게 되었고
애석하게도 당신은 죽음을 맞게 됩니다.
저는 언젠가 엄마에게 외삼촌의 유품이 있느냐고 여쭌 적이 있었어요.
아주 작은 거라도 외삼촌의 흔적을 지니고 있고 싶어서요.
허나 외삼촌의 사후에 곧장 왜경이 집에 들이 닥쳐 집안을 다 뒤지며 외삼촌의 유품을 모두 가져갔다는군요.
그 일로, 외삼촌이 아무도 몰래 독립운동을 하고 계셨다는 사실을가족들이 알게 되었다구요.
외삼촌과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로 H여사 역시 심문을 받았는데, 그녀는 외삼촌에 대해 부인을 하여
풀려난 모양입니다.
만약 장티부스가 외삼촌을 저 세상으로 데려가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한번도 보지 못한 당신,
꿈도 많으시어 사랑하는 누이 동생을 일본 유학보내고 싶어하셨던 당신,
또한 자신에 대한 꿈도 많으셨던 당신,
평생을 교사로 머물지 않으시겠다며 틈틈히 고시공부를 하셨다던 당신,
저는 늘 당신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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